냉면집을 보면 스스로 육수를 내고 면 반죽을 해 명성이 자자한 곳도 있고, 분식집처럼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육수와 면을 떼어다가 파는 곳도 있다. 그런데 서울 마포구 공덕역 먹자골목에 자리 잡은 ‘산까치냉면’은 묘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한 그릇에 1만5000원을 거뜬히 넘는 고급 냉면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분식집 냉면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최적화된 맛과 가격을 선사해서다.
이 집 냉면은 한 그릇에 9000원. 물냉면과 비빔냉면이 동일하다. 가성비 높은 맛으로 이미 유명해서 점심시간 웨이팅이 기본이다. 물냉면을 주문하고 식초와 겨자를 뿌려 한 젓가락 먹었다. 면은 칡가루가 들어가 졸깃하다. 육수는 함흥식의 단맛, 신맛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 시원한 감칠맛과 함께 우주적인 새콤함을 입안 가득 채워줬다. 이 집은 비빔냉면을 주문하면 육수를 따로 대접에 담아 내어준다. 비벼서 먹다가 육수를 따라서 물냉면의 맛까지 경험해 보라는 선의다. 진한 사골 맛이 나는 뜨거운 육수까지 서비스로 제공해 노인층에겐 더없이 좋은 애피타이저 겸 후식이다.
물냉면을 톺아보면, 일단 면의 양과 무, 오이 고명이 푸짐하다는 느낌이 대번에 들었다. 별미 삼아 먹는 간식이 아니라 든든한 한 끼 식사로 삼기에도 충분했다. 거기에 매콤한 특제 ‘다대기’가 들어 있었다. 이걸 육수에 잘 섞으면 북촌피냉면 같은 매운맛도 즐길 수 있다. 사이드 메뉴로는 납작군만두와 철판삼겹살구이가 있다. 비빔냉면에 곁들여 먹으면 더 좋다는 메시지일 텐데, 그것은 취향대로 선택하면 될 일이다.이자카야를 연상시키는 깔끔한 단층에 실내 홀의 규모는 33m²(약 10평) 정도. 테이블 서너 개에 나머지 좌석은 바 형태의 1인석이다. 근처 오피스 샐러리맨들을 주 고객으로 삼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가족 단위가 찾기엔 좀 불편할 수 있다. 주문과 완성된 음식을 받는 것도 손님들이 직접 해야 한다. 식단가를 저렴하게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것이다.
본디 서민 음식이었을 냉면이 전 세대를 아우르며 유행하면서 가격에 다소 거품이 끼었다는 불만의 소리들이 있다. 서민 음식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짜장면이나 칼국수, 막국수 등과 비교해 보면 요즘 냉면값이 못마땅한 위세로 보일 만하다. 그럴 때 산까치냉면은 실용주의자들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고급스러운 함흥냉면과 북촌피냉면 맛을 1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공덕이라는 핫플레이스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시 직장인들에겐 작은 위안이 될 테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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