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값 1만6000원 시대… 실용주의자를 위한 ‘위안’[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1 week ago 5

서울 마포구 공덕역 부근 ‘산까치냉면’의 물냉면. 김도언 소설가 제공서울 마포구 공덕역 부근 ‘산까치냉면’의 물냉면. 김도언 소설가 제공

서울 마포구 공덕역 부근 ‘산까치냉면’의 물냉면. 김도언 소설가 제공서울 마포구 공덕역 부근 ‘산까치냉면’의 물냉면. 김도언 소설가 제공

김도언 소설가

김도언 소설가
꽤 여러 해 전부터 냉면은 사시사철 먹는 음식이 됐다. 어떤 이들은 한겨울에 이 시리도록 먹는 냉면 맛이 진짜라고도 한다. 아무리 그래도 냉면은 더위를 느끼기 시작할 때 시원한 맛으로 먹는 음식 아닐까 한다. 내 주관적인 견해로는 대략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穀雨)를 지나 입하(立夏) 무렵 사람들의 몸속 세포가 냉면 맛을 강렬히 기억해내며 찾는 것 같다. 동절기에는 내지 않던 냉면을 일반 식당들이 다시 메뉴판에 끼워 넣는 것도 바로 그 무렵이다. 그때부터 소문난 냉면 맛집들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냉면집을 보면 스스로 육수를 내고 면 반죽을 해 명성이 자자한 곳도 있고, 분식집처럼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육수와 면을 떼어다가 파는 곳도 있다. 그런데 서울 마포구 공덕역 먹자골목에 자리 잡은 ‘산까치냉면’은 묘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한 그릇에 1만5000원을 거뜬히 넘는 고급 냉면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분식집 냉면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최적화된 맛과 가격을 선사해서다.

이 집 냉면은 한 그릇에 9000원. 물냉면과 비빔냉면이 동일하다. 가성비 높은 맛으로 이미 유명해서 점심시간 웨이팅이 기본이다. 물냉면을 주문하고 식초와 겨자를 뿌려 한 젓가락 먹었다. 면은 칡가루가 들어가 졸깃하다. 육수는 함흥식의 단맛, 신맛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 시원한 감칠맛과 함께 우주적인 새콤함을 입안 가득 채워줬다. 이 집은 비빔냉면을 주문하면 육수를 따로 대접에 담아 내어준다. 비벼서 먹다가 육수를 따라서 물냉면의 맛까지 경험해 보라는 선의다. 진한 사골 맛이 나는 뜨거운 육수까지 서비스로 제공해 노인층에겐 더없이 좋은 애피타이저 겸 후식이다.

물냉면을 톺아보면, 일단 면의 양과 무, 오이 고명이 푸짐하다는 느낌이 대번에 들었다. 별미 삼아 먹는 간식이 아니라 든든한 한 끼 식사로 삼기에도 충분했다. 거기에 매콤한 특제 ‘다대기’가 들어 있었다. 이걸 육수에 잘 섞으면 북촌피냉면 같은 매운맛도 즐길 수 있다. 사이드 메뉴로는 납작군만두와 철판삼겹살구이가 있다. 비빔냉면에 곁들여 먹으면 더 좋다는 메시지일 텐데, 그것은 취향대로 선택하면 될 일이다.

이자카야를 연상시키는 깔끔한 단층에 실내 홀의 규모는 33m²(약 10평) 정도. 테이블 서너 개에 나머지 좌석은 바 형태의 1인석이다. 근처 오피스 샐러리맨들을 주 고객으로 삼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가족 단위가 찾기엔 좀 불편할 수 있다. 주문과 완성된 음식을 받는 것도 손님들이 직접 해야 한다. 식단가를 저렴하게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것이다.

본디 서민 음식이었을 냉면이 전 세대를 아우르며 유행하면서 가격에 다소 거품이 끼었다는 불만의 소리들이 있다. 서민 음식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짜장면이나 칼국수, 막국수 등과 비교해 보면 요즘 냉면값이 못마땅한 위세로 보일 만하다. 그럴 때 산까치냉면은 실용주의자들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고급스러운 함흥냉면과 북촌피냉면 맛을 1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공덕이라는 핫플레이스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시 직장인들에겐 작은 위안이 될 테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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