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 직원들에게 서로 결혼하라고 강요하며 각서를 쓰도록 한 직장 상사가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 제19단독 설일영 판사는 강요 혐의로 기소된 A 씨(60)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 씨는 경기 의왕지역 소재 복지협회 경영총괄본부장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 2021년 3월, 부하 직원 B 씨와 C씨에게 결혼을 강요하고 협박한 혐의로 기소됐다.
A 씨는 B 씨에게 "너네 음양 궁합이 잘 맞아", "결혼하지 않으면 퇴사하겠다고 각서 써라"는 등의 강요를 하고, 이를 거부하자 "너네 이거 안 쓰면 (사무실에서) 못 나가"라고 협박하며 업무상 불이익을 암시했다. B 씨와 C 씨는 불이익을 우려해 결국 각서를 작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설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해자는 이 같은 상황에서 직장 생활에 안착하지 못하고 정신과 진료, 병가와 휴직 등을 거쳐 직장을 퇴사했다"며 "피해자가 그 과정에서 겪었을 정신적 고통의 정도는 컸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이성 교제 상대방 내지 배우자 선택은 사생활 영역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의사결정 대상이고 직장 상사로부터 요구받을 것을 예견하기 어려운 성질의 것"이라며 "피고인은 당시 '퇴사' 내지 '사표'를 언급하며 각서 작성을 요구했고 피해자 입장에서 피고인의 위와 같은 언급은 요구를 거절할 경우 인사, 처우, 결재 등 업무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게 하는 내용"이라고 판시했다.
또 설 판사는 "무리한 요구를 해오는 상사라면 향후 어떤 업무상 불이익을 가할 수 있을 것이란 우려도 충분히 있다. 각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본부장실에서 나갈 수 없다는 취지로 말해, 이 같은 각서를 받아낸 것을 고려하면 의무 없는 일을 시켰다는 고의가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측에 따르면 A 씨는 피해자의 친척이 징계를 요구하자 이를 철회하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다만 설 판사는 "동종 범죄나 벌금형을 초과하는 형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다"고 덧붙였다.
A 씨는 재판에서 공소사실과 같은 말을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해악을 고지했다고 볼 수 없고 강요 고의도 없었다"고 주장하며 혐의를 부인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