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로 인해 중동 정세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양측이 연일 공습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스라엘이 ‘이란 정권 교체’까지 거론하고 나설 정도로 판도는 이스라엘에 유리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친이란 군사 네트워크가 사실상 붕괴된 데 이어 이란 본토마저 폭격을 받고 있는 국면이다. 시아파 맹주로 중동에서 영향력을 유지해온 이란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1년 전 가자지구에서 수렁에 빠진 채 이란의 지원을 받는 적들에게 포위된 이스라엘이 이제 독자적인 방식으로 중동 패권을 재편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란의 동맹 세력인 팔레스타인 및 레바논 무장 정파인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괴멸시킨 이스라엘이 이란의 심장 테헤란 공격을 감행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 영향으로 이란 정권이 교체될 수 있다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군사 작전과 이란 정권 교체 관련성에 관한 질문에 “이란 정권은 매우 약하기 때문에 분명 결과가 될 수 있다”고 답했다.
다만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 정권과 국민을 분리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이란이 가진 것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보유 계획이 전부라면서 “그들은 분명 국민(의 지지)을 갖고 있지 않다. 80%의 (이란) 국민이 이 신학 폭력배들을 버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암살하려는 이스라엘의 계획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부했다는 로이터통신 보도 관련 질문에는 “그 문제는 다루지 않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지난 13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공습을 개시하고 나서 몇 시간 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의 싸움은 이란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며 “우리의 싸움은 여러분을 억압하고 가난하게 만드는 살인적인 이슬람 정권에 맞서는 것”이라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이스라엘의 이번 이란 공격은 1980년 이라크의 침공 이후 이란에 가해진 최악의 군사 공격”이라면서 “테헤란의 지역적 영향력이 얼마나 심각한 타격을 입었는지 그리고 가장 민감한 국가 자산과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이란의 개혁파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의 전 고문이자 경제학자인 사이드 라일라즈는 블룸버그에 “이란의 한계점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찾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에서 이란 담당 보좌관이었던 리처드 네퓨는 워싱턴포스트(WP)에 “이건 핵 프로그램 폐기 작전이 아닌 정권 교체가 종착점인 작전이란 느낌이 확실히 든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무기 야욕을 막는 최후의 방법으로 이란 정권 전복을 꾀했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이스라엘군이 이란 내 공격 목표물의 범위를 에너지·산업·도시시설 등으로 확대하고 있는 점도 이러한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군사 관련 역량을 파괴하려는 시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무능과 경제난에 대한 이란 국민들의 불만을 부추겨 정권 붕괴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군 정보기관 고위간부 출신인 요시 쿠퍼바서는 WP에 이스라엘의 1차 목표가 이란 정권 교체가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그런 결과가 발생할 경우 이스라엘 측이 이를 반길 것이며 “불평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궁지에 몰린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핵무기 개발 의도는 없다면서도 자국이 핵에너지를 연구할 권리는 있다고 강조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우리는 전쟁을 추구하지도, 시작하지도 않았다”며 자국민들에게 이스라엘에 맞서 단결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란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가 지난 13일 새벽 이스라엘의 공습이 시작된 후 가족들과 함께 테헤란 동북부 지하 벙커로 은신했다고 영국 기반 반(反)이란 매체 이란인터내셔널이 소식통을 인용해 15일 보도했다. 로이터통신도 하메네이가 보안이 강화된 안전한 장소에 피신해 있다고 전했다.
이란의 선택지는 좁아졌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페르시아만에 있는 에너지 시설이나 미군 기지 공격, 호르무즈 해협 폐쇄 등이 이란의 보복 수단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원하는 미국의 적극적 개입을 부른다는 점에서 이란이 이를 피할 것으로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정권을 완전히 굴복시키기 위한 마지막 군사 작전 단계는 지상전 투입이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상황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 아울러 이스라엘의 공격이 길어질수록 이란 국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이스라엘에는 부담이다.
텔아비브에 소재한 국가안보연구소의 이란 전문가 대니 시트리노비치는 WSJ에 “이스라엘이 이란 도시에 미사일을 계속 퍼붓고 영공 폐쇄를 강요하면, 이란을 상대로 한 초기 성공을 거둔 이스라엘의 열광도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시트리노비치는 이어 “이스라엘은 지금 이 전쟁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사람들이 출구 전략에 관해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서방의 한 외교관은 이코노미스트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 한 혹은 이란 정권이 붕괴하지 않는 한 이스라엘이 (목표를 달성해 작전을) 끝낼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 두 가지 전제는 “큰 도박”이라면서 결국 협상이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교전이 나흘째에 접어든 16일 오전 이스라엘 주요 도시 곳곳에 이란의 미사일 공격이 이어졌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오전 텔레그램을 통해 “조금 전에 이스라엘군은 이란에서 이스라엘 영토를 향해 발사된 미사일을 확인했다”면서 이스라엘 방공망이 미사일을 격추하기 위해 작업 중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도 충돌 나흘째에 접어든 이날 역시 이란의 군사 시설을 계속 공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