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대표 "파업해도 월급 70% 지급" 밀실 합의…법원은 '무효' 판단 [김대영의 노무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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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대표 "파업해도 임금 지급" 합의
실제 파업 돌입…회사선 임금 미지급
근로자 673명 "합의한 대로 돈 달라"
회사 측 "대표가 대표권 남용해 무효"
1, 2심 법원 "노사 합의 무효" 판단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파업에 나가도 평균임금의 70%를 보전한다." 코레일네트웍스 노사 대표는 2020년 7월 단둘이 만나 이 같은 취지의 노사합의서에 서명했다. '무임금 무노동' 원칙을 우회한 셈이었다. 합의서엔 파업 참여 조합원 수·파업참가일수를 노조가 결정해 제출한 자료에 따라 산정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합의 이후 노사 교섭은 결렬됐고 조합원들은 같은해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해도 임금 지급" 밀실 합의…실제론 '미지급'

하지만 회사가 앞선 합의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근로자 A씨 등 673명은 회사를 상대로 임금 청구 소송을 냈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1심을 맡은 서울서부지법은 지난해 4월 원고패소 판결했다.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제1-2민사부(재판장 구태회)도 지난달 15일 A씨 측 항소를 기각하고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 과정에선 '파업 기간 임금 지급 합의가 가능한지' 여부가 쟁점으로 다뤄졌다. 노사 대표자가 어떤 절차를 거쳐 합의했는지, 상대방이 대표권 남용 사정을 알고 있었는지를 놓고 맞붙었다.

근로자들은 합의서가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노사 대표가 적법하게 작성한 합의서인 만큼 회사는 파업 참여기간에 대해 평균임금 70% 상당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2심에선 설령 대표권 남용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조합원들은 '선의의 제3자'에 해당해 회사가 무효를 주장할 수 없다는 논리도 폈다.

회사 측 주장은 달랐다. 회사는 이 합의서가 이사회 결의 없이 작성됐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또 대표가 회사 이익이 아니라 노조와 조합원 이익만을 위해 대표권을 남용하는 방식으로 체결돼 무효라고 맞섰다. 합의서가 사후에 소급 작성됐으며 '반사회질서 법률행위'라고도 주장했다.

1심 "회사 대표, 대표권 남용해 노사 합의 무효"

1심은 이사회 결의가 없다는 이유만으로는 합의서를 무효로 볼 수 없다고 봤다. 대표이사가 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 효력을 이사회 의결에 종속시킬 경우 대표자가 갖는 단체협약체결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이유다.

하지만 대표이사가 대표권을 남용했다는 회사 측 주장은 받아들여 합의는 '무효'라고 못 박았다. 1심은 "노사합의서는 회사의 전 대표이사가 대표권을 남용해 체결한 것으로 노조도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무효다"라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주목한 것은 합의 과정이었다. 2020년 임금협약 체결을 위한 상견례 자리에선 정년연장 합의 이행, 전환자 처우 개선, 임금인상 등이 논의됐지만 파업기간 임금 지급 여부는 다뤄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같은 날 오후 대표이사와 지부장이 별도로 만나 합의서를 작성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1심은 "노사 간에 아무런 사전 논의가 이뤄진 적이 없는 상황에서 당시 대표이사는 회사 직원, 임원 등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사전에 내부적 검토나 논의 등 최소한의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둘만이 있는 자리에서 노사합의서를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합의 내용도 문제가 됐다. 법원 양측 합의 내용이 회사에 지나치게 불리하다고 판단했다. 원고들이 청구한 금액 합계는 25억원을 넘었다. 반면 회사의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연간 평균 당기순이익은 약 7억8000만원에 그쳤다.

2심도 같은 결론…"대표권 남용 법리, 단협에도 적용"

2심 결론도 같았다. 항소심은 특히 노사 간 단체협약에도 민법상 대표권 남용 법리가 적용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2심 재판부는 "민법상 '대표권 남용의 법리'는 단체협약의 해석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노동조합법이 단체협약 체결 자율성을 보장하지만 그 권한이 무제한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2심은 절차적 문제도 더 강하게 꼬집었다. 2심 재판부는 이 합의서가 "파업 시 임금 제공이라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의 예외를 형성하는 중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도 파업 개시 전까지 협약체결 당사자 외에는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절차상 법질서가 허용하는 합리성도 결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노조 측도 대표이사가 대표권을 남용했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으로 봤다. 합의서가 작성 직후 공개되지 않았고 파업이 임박한 뒤에야 조합원들에게 공유됐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2심은 대표이사가 회사 영리와는 상관없이 노조와 조합원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독단적으로 합의서를 체결한다는 사실을 노조도 알고 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무노동 무임금' 예외, 유효할 수도…"단협 실무에 경고"

물론 이 판결대로 파업기간 임금 지급을 합의한 모든 사례를 무효로 볼 순 없다. 노사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파업기간 임금 전부 또는 일부를 지급하기로 합의한 경우 효력이 인정될 수도 있어서다.

다만 노사 대표자의 서명만으로 모든 절차적 하자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 판결의 핵심이다. 특히 회사에 막대한 재정 부담을 지우고 '무노동 무임금' 원칙의 예외를 만드는 수준의 합의라면 교섭위원·내부 구성원·통상적 교섭 절차와도 맞닿아 있어야 한다.

단체협약체결권은 넓게 보장된다. 그러나 그 권한은 상대방과 통모하거나 자신이 대표하는 조직의 이익에 객관적으로 반하는 내용을 밀실에서 처리할 수 있는 권한까지 포함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은 노사합의의 실체 못지않게 절차적 정당성이 단체협약의 효력을 가르는 핵심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 노무법인 대표공인노무사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의 예외를 만들거나 회사에 중대한 재정 부담을 지우는 합의라면 교섭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와 내부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며 "노사 대표자의 서명이 있더라도 상대방이 대표권 남용 사정을 알 수 있었다면 합의 효력이 부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단체협약 체결 실무에 경고를 준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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