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소상공인 지원안 마련
팬데믹 대출 만기 도래 규모 50조
새출발기금∙개인 워크아웃 제도
지원 기준 대폭 낮추는 방안 거론
신용카드 소득공제율 확대 방안도
“추후 자영업 구조개혁 병행돼야”
새 정부가 소상공인 채무 재조정을 역점 과제로 제시한 것은 급격히 늘고 있는 취약계층 빚이 향후 한국 경제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빚 부담을 이기지 못한 영세자영업자가 무더기로 도산하면 금융기관 등 다른 부문으로 리스크가 전이될 수 있으므로 사전 차단을 위한 ‘안전판’이 필요하다.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등 경제부처는 취약계층 지원 강화를 골자로 한 대선 공약 이행 계획을 국정기획위원회에 전달했다. 국정기획위는 분과별로 보고 내용을 분석·점검하고 세부 이행 계획과 그에 따른 재정 계획을 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산하에 배드뱅크를 설치하고, 신용회복위원회 개인 워크아웃 프로그램을 강화해 취약계층 부실 대출을 흡수하고, 탕감에까지 나선다는 계획이다.
국제결제은행(BIS)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영세자영업자 부채는 지난해 3분기 기준 369조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던 2022년 팬데믹 수준(393조원)에 육박했다. 국내 전체 가계빚(1929조원·1분기 기준)의 19%에 달하는 부채가 빠르게 부실화하고 있다.
코로나19 국면에 기한을 늘려줬던 소상공인 대출 만기가 대거 돌아온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금융권과 당국은 2020년부터 팬데믹으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대출 만기를 연장해줬는데, 9월까지 기한이 늘어난 자금 규모는 47조4000억원에 달한다. 원리금 상환 유예분(2조5000억원)까지 합치면 만기 도래 규모는 50조원에 달한다.
정부는 팬데믹 피해 구제 소상공인 대출을 대상으로 세부 탕감 대상을 정하기로 했다. 10~15년 이상 된 빚 가운데 5000만~1억원 미만인 대출이 소각 대상으로 거론된다. 구체적인 지원 대상은 향후 재원 확충 규모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내수 진작을 위해서라도 배드뱅크를 만들어 소상공인들 사이에서 활력이 돌게 만들어야 한다”며 “지난 6개월간 경제가 워낙 침체된 상황으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지원책 마련이 시급해졌다”고 말했다.
종전 정책 수혜 대상을 넓히고, 세제 지원도 강화한다. 소상공인들이 정책자금을 분할 상환할 수 있게 하고, 소액 생계비 대출 한도를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소상공인에 대한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을 확대하는 방안 역시 업무보고안에 담겼다.
현재 취약계층 빚을 덜어주기 위한 정책 창구로는 캠코가 주도하는 새출발기금과 신복위의 개인 워크아웃 제도가 있다. 새출발기금은 최대 15억원까지 채무를 조정해주는 제도다. 개인 워크아웃은 3개월 이상 연체된 사업자를 대상으로 최장 8년간 분할 상환, 이자 전액 감면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정부는 그동안 두 제도의 실효성이 크지 않았다고 보고 이를 보강하기로 했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을 대폭 낮추는 방안이 거론된다. 캠코는 새출발기금을 통해 2022~2025년까지 30조원 규모로 부실 채권 등을 매입하려 했지만 채무 조정 금액은 단 5조8000억원(4월 기준)에 그친다. 개인 워크아웃도 소상공인 재기 지원 강도가 강하지 않다는 평가다.
다만 당장 급한 불은 잡더라도 추후 자영업 구조개혁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소상공인이 지속적으로 빚을 지고 이를 갚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똑같은 정책 실패가 반복될 수 있다”며 “자영업자가 무분별하게 양산되는 것을 막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기획재정부는 각종 국정과제 등을 뒷받침할 구조적인 재원 마련 방안도 보고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선심성 정책을 위해 남발됐던 각종 세액공제를 수술해 비과세·감면 대상을 대대적으로 정비해 깎아주는 세금(조세지출)을 틀어막겠다는 게 골자다. 올해 조세지출은 78조원으로 역대 최대에 달할 전망인데, 앞으론 국세 감면 법정한도를 지키면서 세수를 아낀다는 방침이다.
조승래 국정기획위 대변인은 부처별 보고와 관련해 “업무보고와 공약 검토를 통해 주요 내용을 분류하고, 심층 분석할 수 있도록 분과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할 것”이라며 “기존 정책과제 이외 신속과제도 발굴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