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4월 28일 영국 재무장관이던 윈스턴 처칠은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전쟁으로 중단한 파운드화의 금태환을 복원한 것이다. 이때 그는 금과 파운드화 간 교환 비율을 전쟁 전 수준으로 맞춘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쟁 수행 과정에서 발행한 막대한 양의 파운드화 중 상당량을 거두어들임으로써 파운드화와 금 비율을 전쟁 이전으로 되돌리겠다는 뜻이다. 급격한 통화량 감축은 경기 침체를 불러일으켰고 이듬해 총파업이 일어났다. 처칠은 재무장관 자리에서 물러나 한동안 야인 생활을 해야 했다.
처칠의 정책은 1920년대 유럽 내 많은 나라 경제 관료의 사고를 지배하던 금본위제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금본위제란 금 보유량만큼 화폐를 발행하는 통화 체제다. 그런데 세계 모든 나라가 금본위제에 기반한 통화 체제를 갖추면 국제 통화 체제는 각국의 무역수지와 실물 경제를 자동적으로 조절해주는 신비로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국이 B국과 무역하는데 A국이 적자가 났다고 하자. 적자액 결제를 위해 A국은 B국에 금을 보내는데, 이로 인해 A국은 통화가 감소한다. 이는 A국 상품 가격 하락을 가져와 A국 제품 경쟁력을 높이기 때문에 수출을 늘리고 무역수지를 균형으로 되돌려놓는다. 흑자국인 B국에서는 반대 메커니즘이 작용해 흑자가 줄고 균형을 찾아가게 됨은 물론이다. 이처럼 금본위제에 기반한 국제 통화 체제는 실물 부문과 국가 간 무역수지를 자동적으로 조정해줄 수 있는데, 이를 가격-정화 플로 메커니즘이라고 부른다.
처칠과 재무부 관료들은 금본위제 복귀를 전쟁 때문에 대내외적으로 헝클어진 영국 경제를 ‘정상 상태’로 복원하는 데 핵심 변수라고 생각했다. 나아가 파운드화 환율을 1차 세계대전 이전 수준에 맞추면 금본위제 메커니즘을 통해 영국 경제가 전쟁 전 모습을 회복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중요한 경제 대국 중 하나이던 영국에서 펼친 잘못된 정책이 야기한 혼란은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경제 질서의 불안정성을 증폭하고, 궁극적으로 1930년대 대공황을 촉발하는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관세를 중심으로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1920년대 영국 경제 관료들의 금본위제 집착을 떠올리게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역사상 19세기 말이 가장 부강한 시기였는데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높은 관세였다고 주장한다. 높은 관세 덕에 당시에는 무역적자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관세를 통해 풍부한 재정 수입을 확보한 결과 소득세 같은 세금 없이도 정부 운영이 가능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논리를 기초로 취임 후 지난 수십 일 동안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관세 전쟁이라고 부를 만한 관세 인상을 단행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이론적으로 틀렸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사실이 아니다. 19세기 말 미국은 강력한 제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영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경제 대국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제조업 성장과 높은 관세는 동시에 존재했던 사실일 뿐 관세가 해외 경쟁자를 차단해서 제조업이 성장한 것은 아니다. 나아가 높은 관세가 정말로 작동했다면 해외 수입이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충분한 수입을 확보할 수 없다. 높은 관세로 인한 보호 효과와 재정 수입 확보는 동시에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라는 뜻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만 올리면 미국 경제가 마술처럼 옛날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리라는 믿음으로 관세에 집착하는 듯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헛된 바람에 불과하다.
집권자가 경제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정책을 펼치고, 이것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라는 사실이다. 도를 넘는 그의 잘못된 정책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미국 경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세계 경제는 엄청난 혼란과 위축을 겪고 있다.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적 파국이 올 가능성, 이를 피할 방법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 때문에 당혹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