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왕’ 꿈꾸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중심 중동 질서 ‘새판 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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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개발 저지 명분으로 이란 신정체제 붕괴가 목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5월 21일(이하 현지 시간) 예루살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5월 21일(이하 현지 시간) 예루살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별명은 ‘비비 킹’이다. 비비(Bibi)라는 애칭에 왕(King)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오랜 기간 권좌에 앉아 있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장수 총리이기 때문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1996년 만 46세 나이로 이스라엘 최연소 총리가 됐으며 1999년까지 재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어 2009년부터 2021년까지 두 번째로 총리직을 수행했다. 그리고 2019년 7월 19일(이하 현지 시간)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다비드 벤구리온 총리가 보유해온 기존 최장수 재임 기록(4875일)을 깨고 역대 최장수 총리가 됐다. 이후 2022년 세 번째로 정권을 잡아 지금까지 통치하고 있다.

네타냐후가 전면전 불사한 이유
네타냐후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제2대 국왕 다윗이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다윗왕은 목동 시절 적국 블레셋의 거인 장군 골리앗을 돌팔매로 쓰러뜨렸다. 이스라엘이 2017년 배치한 중장거리지대공미사일 이름을 ‘다윗의 돌팔매(David’s Sling)’로 명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윗왕은 재임 시절 현 예루살렘을 점령해 수도로 삼았고, 주변 적대 세력들을 물리치며 영토를 확장하는 등 이스라엘 전성기를 이끌었다. 당시 이스라엘 왕국 영토는 ‘나일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 모든 지역’이었다. 현재로 따지면 이스라엘은 물론,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거주하는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을 비롯해 레바논·시리아·요르단 영토 전부와 이라크의 절반 이상, 이집트·수단의 영토 일부를 합친 크기가 된다.

그렇다면 네타냐후 총리가 이란과의 전면전도 불사하면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국제사회는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제거하고 신정체제를 무너뜨리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네타냐후 총리의 의도를 주목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의 야심은 말 그대로 다윗왕 시대와 같은 이스라엘의 영향력을 부활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부터 대규모 군 병력과 무기를 동원해 팔레스타인 이슬람주의 단체 하마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에 대규모 공격을 가해 사실상 무력화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하고 있는 것도 ‘잃어버린 고토(故土)’를 회복하겠다는 의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또 시리아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전 대통령 독재정권이 붕괴하자 군 병력을 투입해 골란고원까지 차지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다윗왕 시절 영토까지는 다시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 지역들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네타냐후 총리의 이런 행보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국가는 이란이다. 이란은 그동안 하마스와 헤즈볼라, 알아사드의 시리아 정권을 물심양면 지원하면서 이른바 ‘이슬람 시아파 벨트’를 구축해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했다. 이에 네타냐후 총리의 속셈은 핵무기 개발을 저지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시아파 벨트를 다시 구축할 수 없도록 이란 신정체제를 붕괴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대규모 공격 작전을 ‘일어나는 사자(Rising Lion)’라고 명명했다. 이는 구약성서 민수기 23장 24절의 “이 백성이 암사자같이 일어나고 수사자같이 일어나서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아니하리로다”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사자는 유대인을 의미한다. 이런 작전명에서 보듯이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에는 ‘끝장’을 보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1979년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이슬람혁명(이란혁명) 이전인 팔레비 왕조 시절 이란 국기에도 ‘사자’ 문양이 있었다는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의 의도는 이란을 이슬람혁명 이전 국가로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혁명 이후 친구에서 적으로
이슬람혁명 이후 이스라엘과 이란은 ‘물과 불’의 관계다. 팔레비 왕조 시절 이란은 이슬람 국가 중 튀르키예에 이어 두 번째로 이스라엘을 독립국가로 인정할 만큼 친밀한 관계였다. 하지만 친서방·친미 성향의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호메이니의 이슬람혁명에 따라 반서방·반미·반이스라엘을 기치로 내건 신정체제 정권이 출범하면서 이란과 이스라엘의 모든 관계는 단절됐고, 양국은 지금까지 서로를 최대 적국으로 간주해왔다. 호메이니는 미국을 ‘거대한 사탄’, 이스라엘을 ‘작은 사탄’으로 규정했다. 호메이니는 시오니스트 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면서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고, 팔레스타인 해방을 모든 무슬림의 종교적 의무라고 강조했다. 이란은 매년 ‘알쿠드스의 날’(Quds Day·예루살렘의 날)에 대규모 반이스라엘 시위를 벌여왔다. 호메이니 후계자인 하메네이는 더욱 강경한 반이스라엘 정책을 추진했다. 양국은 1990년대부터 중동 전역을 무대로 ‘그림자 전쟁(Shadow War)’을 벌였다. 이란은 또 가자지구,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예멘 등에 대리 세력들을 지원해 구축한 이른바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을 통해 이스라엘을 공격해왔다. 양국의 지난 46년 동안 적대 관계는 국가 간 이해관계를 넘어 유대교와 이슬람의 종교적 대결로까지 비화됐다.

3월 28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반이스라엘 시위. 이란은 매년 ‘알쿠드스의 날’(Quds Day·예루살렘의 날)에 대규모 반이스라엘 시위를 벌여왔다. 뉴시스

3월 28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반이스라엘 시위. 이란은 매년 ‘알쿠드스의 날’(Quds Day·예루살렘의 날)에 대규모 반이스라엘 시위를 벌여왔다. 뉴시스
특히 이란의 핵무기 개발은 이스라엘 입장에선 생존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며 핵무기를 비밀리에 개발해왔고, 이스라엘은 이를 저지하고자 모든 국력을 쏟아부었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대외 정보기관 모사드를 통해 이란 핵시설에 폭탄 설치를 비롯해 사이버 공격과 사보타주, 드론 공격, 핵 과학자 암살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왔다. 2015년 체결된 이란 핵합의(JCPOA)에 따라 양국 갈등은 다소 해소되기는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일방적으로 탈퇴 선언을 하자 이란 핵합의는 붕괴됐다. 결국 이란은 핵 활동을 재개하며 우라늄 농축 수준을 무기급에 근접한 60%까지 끌어올렸다. 재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을 통해 이란의 우라늄 농축과 핵 개발을 포기시키려 했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안보 우선주의’를 앞세워 군사 행동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네타냐후 총리가 4월 7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네타냐후 총리가 4월 7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네타냐후 야심 지원한 미국
네타냐후 총리가 이란 신정체제 붕괴와 정권교체를 추진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동 지역 질서를 재편하려는 노림수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해 9월 27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지도 2개를 제시했다. 중동을 ‘축복(The Blessing)’과 ‘저주(The Curse)’ 진영으로 나눈 지도였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요르단·아랍에미리트(UAE)·이집트·수단 등은 축복 진영이지만, 반대로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예멘 등은 저주 진영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축복’ 지도는 이스라엘과 아랍 협력 국가들을 연결한 아시아·유럽 간 육로를, ‘저주’ 지도는 이란과 그 대리 세력의 테러 지역을 시각화한 것이라며 세계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지를 저지하는 것을 넘어 이란의 ‘시아파 맹주’ 지위를 박탈하고 이스라엘이 중동 지역에서 새로운 질서의 중심이 되는 것을 바란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스라엘을 통해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영향력이 약화되면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도 차단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미국이 포르도·나탄즈·이스파한 등 이란 핵시설을 벙커버스터 GBU-57을 장착한 B-2 스텔스 전략폭격기로 공습한 것은 네타냐후의 이런 전략을 지원했다고 볼 수 있다.

더욱 눈여겨볼 점은 네타냐후 총리가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을 지렛대 삼아 수니파 아랍 국가들과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 협정은 2020년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시절 미국 측 중재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이 국교를 정상화한 것을 가리킨다. 유대교·이슬람·기독교가 공통의 조상으로 여기는 ‘아브라함’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지금까지 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 등이 이 협정에 따라 이스라엘과 수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5월 14일 사우디 중재로 아흐메드 알샤라 시리아 임시 대통령과 전격 회담을 갖고 “시리아가 정상 국가로 복귀하려면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가 필수”라며 아브라함 협정 참여를 독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도 이스라엘과 수교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에 반대하지 않은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네타냐후가 이스라엘을 축으로 아랍 국가들과 연대해 새로운 중동 질서를 구축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95호에 실렸습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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