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IFRS IC)가 삼성생명 ‘일탈 회계’ 논란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글로벌 회계법인 등의 의견을 수렴한 뒤 이르면 다음달 중으로 공식 입장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국내 금융당국에 이어 국제 회계기구까지 참전하며 논란이 재차 불거질 전망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IFRS IC는 딜로이트, EY, KPMG, PwC 등 글로벌 4대 회계법인과 주요국 증권감독기구에 ‘한국 생명보험사의 계열사 주식 회계처리 방식’과 관련해 의견수렴을 진행하고 있다. IFRS IC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약 130여개 국가에서 사용하는 IFRS를 해석하고 지침을 정하는 기구다.
IFRS IC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에 해당하는 ‘의제 결정’(Agenda Decision) 문서를 이르면 다음달 말께 발표할 계획이다. IFRS IC가 중요한 건 회계기준 해석과 관련해 최상위 의사결정기구이기 때문이다. IFRS IC의 ‘의제 결정’은 회계기준 적용 방향이나 판단 논리를 안내하는 문서다. 공식 해석(Interpretation)은 아니지만, 사실상 반드시 따라야 하는 가이드라인에 해당한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IFRS IC가 각국의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의제 결정 형식으로 공식 입장을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만약 글로벌 ‘빅4’ 의견이 크게 엇갈릴 경우 단기간 내에 결론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며 “의제 결정이 아닌 기준서 개정 작업에 착수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논란의 중심에는 삼성생명을 비롯한 국내 생보사의 계열사 주식 회계처리 문제가 있다. 삼성생명은 1980~1990년대 유배당보험을 팔아 벌어들인 보험료로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을 사들였는데, 현재 유배당보험 계약자 몫(삼성전자 주식 미실현이익)을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부채 항목으로 분류하고 있다.
원칙대로 보험회계기준(IFRS17)을 적용하면 삼성생명은 계열사 주식 매각 계획을 세워 계약자지분조정이 아닌 보험부채에 반영해야 한다. 삼성생명을 비롯한 국내 생보사들은 회계기준서(IAS 1)의 ‘일탈(Departure)’ 조항에 근거해 예외적으로 회계처리하고 있다.
IFRS IC가 특정 국가, 특정 산업의 회계처리 방식에 입장을 내는 건 이례적이다. IFRS 측이 국내 회계 사안을 들여다보기로 한 배경에는 한국회계기준원이 있다. 회계기준원은 지난달 말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 및 IFRS IC 주요 인사를 만나 ‘일탈 회계’ 문제를 논의했다. 회계기준원은 삼성생명의 계열사 주식 회계처리가 ‘오류’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기구 개입으로 삼성생명 회계 논란이 또 다른 국면으로 넘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당초 삼성생명 ‘일탈 회계’ 문제는 금융감독원·회계기준원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질의회신 연석회의에서 다뤄질 예정이었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삼성생명 일탈회계와 관련해 금감원이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다’는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적에 “일탈회계 관련 부분은 국제회계기준에 맞게 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내부 조율이 된 상태”라고 답했다. 금감원은 IFRS IC 해석과 무관하게 질의회신 연석회의를 통해 조속히 결론을 내린다는 입장이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