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국뮤지컬-문화에 반해 한국어 공부… 늘 새로운 영감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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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작가 윌 애런슨 서면 인터뷰
“어린 시절 영화음악에 빠지고, 고교 때 트롬본 불고, 재즈 활동
연주 통해 세상과의 소통 표현
박천휴 작가의 상상력 큰 울림”

“외로운 아이들이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과 연결되려 한다는 클리셰가 있잖아요. 저도 그런 아이 중 하나였죠.” 지난달 사상 최초로 미국 토니상 6관왕에 오른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윌 애런슨 작가(44·사진)는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뮤지컬 작가가 되고 싶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애런슨 작가가 토니상을 받은 뒤 인터뷰에 응한 건 처음이다.

지난달 미국 토니상 6관왕을 휩쓴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브로드웨이 공연. 이 작품을 박천휴 작가와 함께 만든 윌 애런슨 작가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작가로서 낯설면서도 구체적인 세계로 관객들을 데려가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NHN링크 제공

지난달 미국 토니상 6관왕을 휩쓴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브로드웨이 공연. 이 작품을 박천휴 작가와 함께 만든 윌 애런슨 작가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작가로서 낯설면서도 구체적인 세계로 관객들을 데려가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NHN링크 제공
그는 ‘어쩌면 해피엔딩’의 음악을 만들었고, 박천휴 작가(42)와 함께 극본을 썼다. 한국에선 작가와 작곡가를 구분하곤 하지만, 애런슨 작가는 둘 다 “쓰는 사람”이란 뜻에서 ‘작가(writer)’로 불러주길 바랐다. ‘윌휴 콤비’로 사랑받는 두 예술가는 2008년 뉴욕대(NYU)에서 만나 친구가 된 뒤 2012년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를 시작으로 줄곧 협업해 왔다.

● “테이프에 음악 녹음해 들으며 꿈 키워”

‘어쩌면 해피엔딩’은 윌휴 콤비를 세계에 각인시킨 작품이다. 가까운 미래의 서울을 배경으로 버려진 로봇들의 인간적인 사랑을 그린 이 뮤지컬이 해외에서도 사랑받은 이유는 뭘까. 애런슨 작가는 “왜인지 간단하게 답하기란 참 어렵다”면서 “결국 팬들과 입소문 덕분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는 스스로의 예술적 여정의 시작을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여덟 살부터”라고 했다.

“제 선생님들은 음악을 배우는 것이 ‘의무’가 아니라 ‘특권’으로 느끼게 해주셨어요.”

영화와 만화, 합창 등 “예술과 이야기”라면 뭐든 좋아했던 그는 TV 영화 음악을 카세트테이프로 녹음해 듣기도 했다. 고교 시절엔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트롬본을 불었으며, 재즈 밴드를 하며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음악의 매력을 배웠다. 애런슨 작가는 이때의 밴드 경험이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 큰 영향을 줬다”고 떠올렸다. 실제로 극에서 주인공 올리버는 재즈를 무척 좋아한다.

그에게 박 작가가 처음 보낸 ‘어쩌면 해피엔딩’ 아이디어를 담은 이메일에도 자동차 위에서 트롬본을 부는 외로운 로봇의 이미지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정말 흥미롭고, 감정적으로 큰 울림을 받았다”고 했다.

애런슨 작가는 하버드대에서 음악을, 베를린예술대에서 음악 이론을 공부했다. 이후 뉴욕대 대학원에서 뮤지컬 극작을 배우기 시작했다.

“뮤지컬은 음악과 이야기, 가사를 모두 아우르는 종합예술이란 점에서 매력적이었어요. ‘스위니 토드’와 ‘헤어스프레이’처럼 전혀 다른 스타일이 뮤지컬로서 공존하는 자유로움도 좋았고요.”

그는 평소 어린이 공연에도 관심이 많다. 2010년부터 한국 영어교육업체 잉글리시에그의 전속 작곡가로서 어린이 뮤지컬 음악을 300곡가량 만들었다. 2017년엔 어린이 뮤지컬 ‘피트 더 캣(Pete the Cat)’을 미국에서 초연했다.

● “한국어란 두 번째 언어가 불러온 영감”

한국과의 첫 인연은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을 뮤지컬로 옮긴 ‘마이 스케어리 걸’(2009년)의 노래를 만들었을 때다.

“(공연 후) 한국의 뮤지컬계와 문화에 반해 버렸어요. 뉴욕으로 돌아온 뒤 혹시 또 한국에서 일할 기회가 생길까 싶어 한국어 책과 CD를 사서 공부를 시작했죠.”

애런슨 작가는 박 작가와도 늘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쓰며 소통한다. 그는 “‘번지점프를 하다’ 때부터 이런 식으로 작업해 이젠 자연스럽다”고 했다. 그의 한국어 실력은 이제 한국 소설도 편안하게 읽을 정도다.

“물론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작업하는 건 늘 긴장되죠. 하지만 덕분에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기도 해요. 미국인과 한국인이란 구분보단, 예술가로서 서로를 바라보며 반응합니다.”

그는 박 작가에 대해선 “예술적 취향이 비슷해 친해졌다. 그는 매우 드문 감각을 가졌다”고 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엔 대사와 노랫말 없이 음악만으로 감정을 전하는 장면이 여럿 있다. 직접적인 대사보다 주인공의 감정을 직관적으로 전할 기악 표현에 공을 들였다.

“연주 시퀀스는 작품의 핵심입니다. 로봇은 인간보다 감정 표현이 서툴고 절제돼 있죠. 그래서 늘 목청껏 노래하기보단 음악으로 감정을 폭발적으로 드러내고 싶었어요.”

● “낯설지만 보편적인 감정 표현

윌휴 콤비는 지금껏 다양한 시점의 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발표해 왔다. ‘일 테노레’(2023년)는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를, ‘고스트 베이커리’(2024년)는 1970년대 서울에서 양과자점을 꿈꾸는 여성을 그려냈다.

“모든 창작자가 그렇듯 공감되면서도 독창적인 이야기를 찾고 싶어요. 지금까진 한국 배경이 이런 목표에 딱 맞았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이야기가 있다면 다른 배경도 탐구하고 싶어요.”

당장 앞두고 있는 목표는 ‘일 테노레’의 영어 버전 완성이다. ‘어쩌면 해피엔딩’도 올 10월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돌아온다. 2028년을 목표로 브로드웨이 버전 한국 공연도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관객으로서의 저는 고유한 세계관과 소리, 외형을 만들어내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낯설고 구체적인 세계로 데려가면서도, 그 안에서 보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작품이죠. (작가로서) 앞으로도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적인,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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