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함께 일상언어로 쓴 첫 판결문
사회적 약자 사법지원 따른 ‘이지리드’
AI 학습시켜 이해하기 쉬운 요약 내놔
지적장애인에게 “○○○이 재판에서 이겼습니다”라고 쉽게 쓴 판결문이 처음으로 나왔다. 사회적 약자의 사건을 전문으로 처리하는 ‘한국형 사회법원’이 출범한 이후 소송 당사자가 재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결과다.
29일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강우찬)는 지적장애인 A씨가 서울 양천구청장을 상대로 낸 장애정도 미해당 결정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주문을 이 같이 썼다.
판결문의 첫머리에 들어가는 ‘주문’에도 ‘(=판결의 결론)’이라고 덧붙였다.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는 주문 뒤에는 ‘(소송에 들어간 돈은 구청이 냅니다)’라고 쉽게 풀어 썼다.
판결 이유는 그림과 함께 이해하기 쉽게 짧은 일상어로 반영됐다. 이른바 ‘이지 리드(Easy-Read)’ 판결문이다.
이번 이지리드 판결문은 올해 대법원이 처음 시행한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사법지원 예규’에 따라 처음으로 나왔다. 장애인·임산부·아동·기초생활수급대상자 등의 사회보장사건을 처리하는 서울행정법원의 전문합의부의 새로운 시도다.
서울행정법원은 ‘한국형 사회법원’ 모델을 추진하며 이 같은 체제를 갖췄다. 이번 사건을 맡은 행정7부의 강우찬·신옥영·이주일 판사 모두 대법원 장애법연구회 회원들이다.
총 27페이지 분량의 판결문에서 ‘이지 리드’는 약 3페이지 분량에 걸쳐 도입됐다. 쉬운 말로 부연한 주문에 이어 ‘법원의 판단을 알기 쉽게 알려드립니다’라는 판결 이유 설명이 뒤따랐다.
결과 설명은 “법원은 당신을 지적장애인으로 인정합니다. 이제 구청은 ○○○씨에게 장애인을 위한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라고 쉽게 썼다. 판단 근거도 “첫째, 오랫동안 당신을 직접 만나고 치료한 의사들의 말은 믿을 만합니다. 둘째 당신은 오랫동안 생활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셋째, 판사도 법정에서 당신을 직접 만났습니다”라고 풀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는 사법정책연구원의 ‘이지리드 판결서 작성방안’을 대규모 언어모델(LLM) 인공지능(AI)에게 학습시켜 자동으로 만들어냈다.
“장애 결정, 여러 요소 종합해 따져야”
판결문을 쉽게 썼다는 형식뿐 아니라 이번 판결은 현행법을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안으로 폭넓게 해석했다.
소송을 제기한 A씨(27)는 어릴 때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다가 시설에서 자랐다. 지난 2019년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지능지수(IQ)가 67이라는 측정을 받았다. IQ가 70 이하인 사람은 지적장애인으로 등록이 가능하다. A씨는 IQ 외에도 강박·폭력성향·양극성 정동장애 증상·우울증·뇌전증 등의 문제를 겪었다. 천주교 기관의 도움을 받아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해 생활해왔다.
A씨는 2023년 11월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지적장애인 등록을 신청했지만 양천구청은 국민연금공단의 심사를 거쳐 A씨가 지적장애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A씨가 어릴 때는 IQ가 70이 넘었을 때도 있었으므로 검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법원은 지적장애인 여부를 판별할 때는 IQ와 같은 정량지표뿐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IQ가 70을 넘어가더라도 일상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며 “정량적 평가인 IQ 산정에 다소 의문이 있을 수 있는 경우라도 일상 및 사회생활에서의 상당한 제약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장애를 섣불리 부정할 수 없다”고 했다. 복수의 의사들이 A씨에 대해 지적장애 판정을 내린 정황도 반영됐다.
재판부는 “칸막이 방식으로 나눈 각 정신장애의 하위 범주의 전문적 요건에는 해당하지 않는 경우라도, 개인이 가진 각각의 장애를 전체적 관점에서 관찰해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섣불리 장애 비해당 처분을 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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