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사고를 일으키는 의사들
대니엘 오프리 지음, 고기탁 옮김, 열린책들 펴냄
급성 골수 백혈병 환자였던 ‘제이’는 의료 체계의 사소한 오류로 목숨을 잃었다. 환자의 고통을 우려한 나머지 제때 골수 생체검사를 하지 않은 탓이다. 화상으로 응급실을 찾은 ‘글렌’ 역시 당직 의사의 판단 착오로 치료 적기를 놓쳐 세상을 떠났다. 화상센터로 곧바로 이송돼야 했지만 중환자실 입원을 지시한 것이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의료사고이기에 더욱 안타깝다.
신간 ‘의료 사고를 일으키는 의사들’은 30년간 내과 의사로 환자들을 진료해온 대니엘 오프리 미국 뉴욕대 의대 교수가 의료계 내부자의 시선으로 의료사고의 실체를 추적한 책이다. 다만 그는 의료사고가 의사나 환자 개인의 잘못이 아닌, 의료 시스템의 복합적인 오류와 의료 문화의 한계 속에서 벌어지는 비극이라고 진단한다.
오프리 교수는 “오늘날 생존 모드로 일하는 의사와 간호사 대부분은 성급한 판단과 너무나 빤한 진단에 기대기 쉽다”면서도 “속도를 늦추고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고자 흐름에 맞서 싸우는 것은 특히 하루하루를 그저 버티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벅찬 일”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대형 병원 의료진에게 주어지는 진료 시간은 대부분 10분 이하다. 의사 수에 비해 환자 수는 너무 많고,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찬찬히 살펴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피로에 지친 표정으로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고 진료를 보는 의사들을 한 번쯤 마주한 적이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는 진단명 오기나 초기 판단 착오 같은 사소한 실수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의료사고 문제는 환자 사망 이후에도 유족들을 괴롭힌다. 병원이나 의료진은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유족에게 환자의 사망 이유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유족들이 의료 소송을 제기하는 데만 5년 이상이 걸린다는 사실도 비극적이다.
그가 제안하는 것은 의료 체계의 근본적인 변화다.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 개선이나 환자 증상별 진단 점검 목록을 도입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