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비서실에서 대통령 최측근이라고 하면 흔히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부속실장이나 의전비서관, 총무비서관 등을 꼽는다. 하지만 이들 못지않게 대통령을 자주 독대하고 밀착 수행하는 자리가 있다. 바로 대통령 주치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9일 박상민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를 대통령 양방 주치의로 위촉하면서 대통령 주치의의 역할과 위상에 다시 한번 관심이 쏠린다.
20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박 교수는 서울대병원 출신 12번째 대통령 주치의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대통령이 총 14명 배출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대병원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대통령 주치의가 된 박 교수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 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은 전혀 없다”며 “실적과 평판을 종합해 선정했다”고 밝혔다. 다만 박 교수는 대선 때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의 서울대 가정의학과 후배라는 점에서 정 전 청장의 추천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최초의 비서울대 출신 대통령 주치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건강을 책임졌던 허갑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 직에 오르기 전까지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단식 후유증, 성대 혹 제거, 장염 치료 등으로 세 번이나 입원 치료할 정도로 세브란스 의료진을 신뢰했다.
이 밖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출신 주치의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 때 이병석 산부인과 교수가 있다. 그는 산부인과 전문의 출신 첫 주치의였는데, 이는 박 전 대통령이 첫 여성 대통령인 데 따른 발탁이었다.
주치의 발탁은 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이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례로 허 교수는 1990년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단식 투쟁으로 건강이 악화됐을 때 치료를 맡으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고향 후배를 주치의로 둔 사례도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주치의는 경북고 후배인 최규완 서울대 의대 교수였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경남고 후배인 고창순 서울대 의대 교수를 주치의로 뒀다. 고 교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취미였던 조깅을 함께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다고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돈인 최윤식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에게 주치의 역할을 맡겼다. 최 교수 장남이 이 전 대통령 둘째 사위다.
두 대통령의 건강을 책임진 경우도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 주치의였던 송인성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를 발탁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비서실장을 지냈던 문 전 대통령이 송 교수라면 믿을 만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통령 주치의를 맡는 것은 의사로서 매우 영예로운 일이지만 행동반경이 제약되는 등 책임도 크다. 공식 규정은 아니지만 ‘주치의는 20분 내 대통령실에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실 반경 4㎞ 내 위치해야 한다’ 등의 관행이 존재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치의로 허 교수가 발탁되자 서울대에서 ‘연세대 병원에서 근무하는 허 교수가 청와대에 제때 들어오지 못할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고, 연세대 측이 현장 주행 실험까지 해서 반박했다는 일화가 있다.
대통령 주치의는 차관급 예우를 받지만 무보수 명예직이다. 또 통상 2주에 한 번 대통령실을 찾아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대통령의 휴가와 해외 순방, 지방 일정에도 동행해야 하는 등 임기 내내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대통령 임기 중은 물론 퇴임 이후에도 자신이 모신 대통령의 건강 정보를 함구해야 한다. 무거운 입이 중요 덕목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