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병원이 영리 추구를 안 한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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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병원이 영리 추구를 안 한다는 착각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 과정에서 새삼 확인된 사실이 있다. 병원과 의사들이 영리 활동에 ‘진심’이라는 것이다. 사직 전공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1·2차 병원에 재취업한 뒤 소위 ‘돈 되는’ 비급여 진료 비용은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해 중소 병·의원을 통한 실손의료보험금 지급액은 사상 처음으로 8조원을 넘었다. 지급액 증가분 7822억원 중 비급여가 4539억원에 달했다. 이익 추구를 위해 도수 치료, 비타민 주사 등을 경쟁적으로 늘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영리병원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국민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10년 연구보고서에서 “병원들의 영리 추구 행위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영리병원을 금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진단했다.

번번이 좌초한 투자개방형 병원

영리병원은 영리법인이 세운 병원을 말한다. 현행 의료법상 병원은 의사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비영리법인만 개설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병원이 영리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국민건강보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병원의 91.5%가 수익을 의사 개인이 챙겨가는 의원급이다. 대학병원도 장례식장, 푸드코트 등 부대사업을 확대해가며 수익 창출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투자자를 모집해 수익을 배당하지 못할 뿐, 영리 활동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영리병원은 정확히는 ‘투자개방형 병원’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투자개방형 병원 도입은 해묵은 과제다. 김대중 정부는 경제자유구역에서 외국인 전용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을 처음으로 허용했다. 이후 2005년 송도경제자유구역에서 미국 뉴욕프레스비테리안(NYP) 병원이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을 추진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시민단체의 반대로 세부 법령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제주도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과 내국인 진료의 물꼬를 텄다. 이후 박근혜 정부 들어 녹지국제병원이 첫 투자개방형 병원으로 허가받았다. 그러나 녹지국제병원은 외국인만 진료하도록 제한한 허가 조건 등에 반발해 개원을 미뤘고, 시민단체 반대까지 겹치자 제주도는 2019년 허가를 취소했다.

유럽 복지국가·동남아도 허용

투자개방형 병원 도입은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복지를 강조하는 유럽 국가는 물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태국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국가도 허용하고 있다.

투자개방형 병원 도입 없이 의료산업 선진화는 요원하다. 국내 병원은 첨단 의료기기를 도입하거나 신규 시설을 세우려고 해도 주식, 채권 발행 등을 통한 자금 조달이 불가능하다. 세계적으로 고급 의료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규제를 유지한다면 국내 병원들의 경쟁력을 키우기 어렵다. 반대 측은 ‘의료 민영화’라고 비판하지만 오히려 민간보험을 적용받는 투자개방형 병원은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이제 영리는 악하고 비영리는 선하다는 착각, 의사가 버는 것은 괜찮고 법인이 버는 것은 안 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사회는 ‘한국은 의료산업이 선진화할 수 없다’는 패배 의식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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