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임윤찬이 한예종을 떠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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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임윤찬이 한예종을 떠나는 이유

국내 피아노 전공자 사이에선 이런 얘기가 회자된다. 조성진의 공연을 보면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멋진 연주를 하고 싶다’는 꿈을 품지만 임윤찬의 연주를 보면 절망하게 된다고. 임윤찬에게선 보통 사람이 범접하기 힘든 천재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들의 회상에 따르면 임윤찬은 입학할 때만 해도 평범한 학생 중 한 명이었는데, 손민수 교수를 스승으로 만나면서 잠재력이 폭발했다고 한다. 재학 중 세계적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임윤찬에게 한예종 교수들이 느끼는 애정은 각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반기 스승 따라 미국행

그러나 임윤찬은 올해 하반기 미국 보스턴에 있는 명문 음악학교 뉴잉글랜드 음악원으로 적을 옮긴다. 손 교수를 따라가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 이유가 아니어도 임윤찬은 한예종을 떠났을 것이라고 한다. 한예종에는 정식 석·박사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1993년 전문 예술인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한예종은 클래식 미술 영화 무용 등 각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를 배출했다. 하지만 고등교육법상 ‘대학교’가 아니라 ‘각종학교’로 분류돼 석·박사 과정을 운영할 수 없었다. 대학원에 해당하는 예술 전문사 과정을 운영하고 있지만 정식 학위 수여는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한예종의 예술 전문사 과정을 졸업한 학생은 대학이나 예술 관련 기관에 취업할 때 불이익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석·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연구자가 없어 국내외 다른 대학과의 공동 연구나 기업과 산학협력을 하는 데도 제약이 따랐다. 학교에 정식 석·박사 과정을 개설하는 것이 언젠가부터 한예종의 숙원 사업이 됐다. 이를 위해선 특별법(한예종 설치법) 제정이 필요한데, 그동안 세 차례에 걸쳐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불발됐다. 대다수 국내 예술대학이 격렬하게 반대한 탓이다.

이론 기반 돼야 창작도 가능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한예종은 실기 중심 교육기관이기 때문에 이론 연구와 학위는 일반 대학이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또 예술대학 간에 과도한 경쟁을 유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시대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 오늘날 예술은 단순한 ‘기예’가 아니다. 현대 예술은 철학 문학 과학 기술 등과 끊임없이 교감하며 진화하고 있다. 탄탄한 이론을 기반으로 한 기초예술 교육이 있을 때만 비로소 창의적인 예술 창조도 가능해진다. 영국 왕립음악학교, 프랑스 국립고등음악무용원, 미국 줄리아드 등 대부분의 해외 예술 명문대학이 석·박사 과정을 통해 창작과 이론을 아우르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대중문화 영역에서 시작된 한국 문화예술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은 최근 몇 년 새 클래식과 미술 등 순수예술 분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세계 유수의 콩쿠르를 휩쓸고 있고, 한국 작가들은 베네치아비엔날레 등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K클래식과 K아트는 더 이상 소수의 재능으로만 유지될 수 없다. 국가 차원에서 예술 인재 육성 전략을 수립해 구조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한예종에 석·박사 과정을 허용하는 게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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