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난 사람]“흙과 불,바람으로 빚은 기와… 39단계 손길 거쳐야 일곱 빛깔 피어나”

1 day ago 2

종묘 정전 기와 만든 김창대 제와장
4년 동안 매달려 종묘 정전 기와 완성… 왕들의 제례 공간이라 신중하고 조심
땡볕에도 1000도 가마 때며 구슬땀… 우리 문화유산엔 전통기술이 딱 맞아
누구든 할 일이라 믿으며 30년 버텨… 별세한 스승과 동료 덕에 한길 걸어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종묘 정전 앞에서 만난 김창대 제와장. 사진 찍는 게 쑥스러워 한참을 머뭇거리는 모습이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닮았다. 그는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정전 기와 작업을 끝내고 지난해 수술도 받았다”며 “기와를 굽는다는 건 오랜 시간을 견디고 버티는 행위”라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종묘 정전 앞에서 만난 김창대 제와장. 사진 찍는 게 쑥스러워 한참을 머뭇거리는 모습이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닮았다. 그는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정전 기와 작업을 끝내고 지난해 수술도 받았다”며 “기와를 굽는다는 건 오랜 시간을 견디고 버티는 행위”라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6만6620장’.

지난달 20일 약 5년 만에 우리 곁에 돌아온 종묘 정전(正殿)에 새로 올린 기와의 숫자다. 2020년 안전 문제로 보수에 들어갔던 정전은 기존 기와 중 상태 좋은 약 5000장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갈아야 했다. 기와 한 장당 완성에 걸리는 기간은 평균 1개월. 4년 가까이 쉼 없이 빚고 굽고 말리고, 다시 부수고 빚는 과정을 반복해 정전 지붕은 본모습을 되찾았다. 여름 땡볕에도 900∼1000도를 오가는 가마 앞에 불을 때며 이를 이뤄낸 건 김창대 제와장(53)이다. 국가무형유산 제91호 보유자인 그는 1998년 일면식도 없던 한형준 제와장을 찾아가 무작정 매달렸다. 그렇게 사제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은 당시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던 전통 기와 제조법을 되살렸다. 그리고 2008년 화마로 잃어버린 숭례문 복원에 수제 기와을 얹으며 우리 문화의 소중한 가치를 드높였다. 정전에 이어 현재 사직단 기와까지 제작하며 종묘사직(宗廟社稷)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김 제와장을 지난달 30일 오후 종묘에서 만났다.》

―오늘 오전에도 작업하셨다고요.

“새벽 4시까지 전남 장흥 작업장에서 가마를 때다 왔지요. 불을 균일하게 유지해야 고른 기와가 나오거든요. 마침 오늘 사직단 현장에 올 일이 있어서…. 기와는 만든다고 끝이 아닙니다. 결국 건축물에 제대로 올라가야 매조지는 거니까요. 현장과 소통하는 게 무척 중요합니다. 겸사겸사 종묘도 들렸습니다.”

―올해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지 30년 됩니다. 뿌듯하겠습니다.

“웬걸요. 올 때마다 걱정만 가득합니다. 행여 실수한 건 없는지, 종묘에 모신 왕들께서 노여워하시진 않길 바라며 고개를 숙입니다. 오늘도 ‘아, 그건 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하고 아쉬운 게 떠오르네요. 4년 동안 정전 기와 작업하며 신가한 경험을 했어요. 희한하게 가마 불 때는 날이면 기온도 바람도 딱 맞아떨어졌어요. 하늘이 보살펴 주시는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제가 부족했을까 봐….”

―종묘가 지닌 무게감이 컸나 봅니다.“아무렴요. 다른 기와 작업 때도 제일 신경 쓰이는 건축물이 사당 같은 제례 공간이에요. 조상님을 모시는 곳이잖아요. 하물며 종묘 아닙니까. 물론 더 자긍심을 갖고 일하기도 했어요. 돈벌이로 여겼으면 맡지도 않았겠죠. 평생 닦아 온 재주로 우리 문화유산을 정비한다는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책임감은 말로 못 합니다.”

―이런 큰 공사를 마치면 이문도 남는 거 아닙니까.

“그런 거 바라면 이 일 못 합니다. 요즘에야 사정이 좀 나아져서 겨우 적자나 면하는 수준입니다. 국가유산청도 신경을 많이 써 주시니까요. 숭례문 때 생각하면 훨씬 나아졌죠. 그땐 정말 마이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숭례문 복원하고 손해를 보셨다는 건가요.

“이런 얘기 조심스럽긴 한데, 처음부터 스승님하고 각오하고 했던 일이에요. 당시 전통 기와는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며 실전되다시피 한 상태였어요. 그걸 스승님 혼자 되살리려 버티고 계셨던 건데, 숭례문은 적당히 해선 안 되잖아요. 안 그래도 비통하게 잃었는데, 제대로 살려내야 할 거 아닙니까. 옛 문헌 등을 다시 뒤지고 뒤져서 전통에 가장 가까운 방식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수없이 실험하고 실패하고 또 시도했겠어요. 스승님이 2013년 숭례문 기공식 끝내고 한 달 뒤에 돌아가셨어요. 모든 걸 다 쏟아부으신 거죠.”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계속하신 겁니까.

“이게 ‘제 일’이니까요.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스승님이 걸으신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도 싶었어요. 저도 관두고 싶은 순간이 많았죠. 도자 전공이니 번듯한 작품 만들면 좀 근사하게 살 수도 있으련만. 내일은 관둬야지 하고 잠들었다가도, 다음 날이면 새벽같이 가마 앞에 나와 앉아 있어요. 하얗게 피어나는 불꽃을 보고 있으면, 또 마음을 빼앗기고 몰두하는 거죠. 그러다 30년 세월이 흘러버렸네요.”

―수제 전통 기와의 장점은 뭡니까.

“비용 생각하면 기계로 찍는 기와가 효율적이죠. 시간도 인력도 몇 배는 줄어드니까. 공장 기와가 더 단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문화유산엔 우리 전통 기와가 가장 잘 어울려요. 미학적인 측면만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정전을 대규모로 수리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건축물이 무거운 하중에 짓눌려 사고가 날 위험이 컸기 때문이에요. 1970, 80년대 하나둘 교체해 올린 공장 기와들 영향이 큽니다. 전통 기와보다 2배 가까이 무겁고 둔탁하죠. 선조들이 수제 기와를 올린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거지요.”

―원래 회화 전공이라고 들었습니다.

“미술 배울 땐 수채화로 입문했어요. 근데 부산공예고교(현 한국조형예술고교)에 가며 도자에 관심을 가졌죠. 실력도 나쁘지 않아 모교에 9급 공무원으로 취직했어요. 근데 우연히 스승님 나오시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홀딱 반해버렸어요. 부산에서 살던 놈이 장흥까지 물어물어 찾아갔죠. 근데 어찌나 박정하게 대하시는지. 3개월 꼬박 매달리니 겨우 받아주셨어요.”

―왜 매몰차게 대하셨을까요.

“제 미래가 걱정되셨던 거죠. 당신이야 평생 해 온 일이라지만, 젊은 놈이 밥 벌어먹고 살지 못할 게 뻔했거든요. 공무원이니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힘든 길을 가려 하느냐고 하셨어요. 그땐 젊은 혈기에 큰소리 땅땅 쳤죠. 할 수 있다고, 걱정 말라고. 기와로 성공해 보이겠다고.”

―그렇게 뛰어드니 천직인 걸 알았군요.

“아이고, 웬걸요. 여러 번 도망가려고 했습니다, 하하. 그저 하다 보니 오기가 생겨서…. 기와 한 장 굽는 데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아십니까. 그저 빚고 굽는 게 아닙니다. 크게는 16단계, 세밀하게는 39단계를 거칩니다. ‘쨀줄질’ ‘고마괘기’ 같은 전통 방식은 설명드려도 이해하기 어려울 테고 …. 쉽게 말해 5가지 흙을 용도에 맞게 배합하고, 가마에서 일곱 빛깔을 띠도록 구워 내고, 그걸 자연 바람에 제대로 말려내야 하죠. 형태에 따라 암키와 수키와 암막새 수막새 장식기와, 크기 따라 소·중·대·특대와 등등 맞춤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왜 도망가지 않았나요.

“누군가는 해야 하잖아요. 1980년대만 해도 수제 기와하는 곳이 몇 있었지만, 이젠 저랑 제 동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종묘 제안이 왔을 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동료랑 소주 한잔하며 자신 없다고 속내를 털어놓았죠. 뭣보다 육체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습니다. 이 작업 하는 4년 동안 다른 청탁은 일절 받지도 못 해요. 6일마다 가마에 불을 때며 매달려야 하는데, 자칫 실수라도 할까 봐 그것도 두려웠고요.”

―결과가 나쁠까 봐 걱정됐던 건가요.

“그런 점도 없진 않겠지만, 기와라는 게 올린다고 끝이 아니거든요. (정전을 가리키며) 오늘처럼 맑은 날에 찬찬히 보세요. 기와마다 색깔이 죄 다르지 않습니까. 수제로 구웠기 때문에 하나하나 독특한 색을 지닌 거예요. 이게 5년은 지나야 풍우를 받으며 전체적인 조화를 이뤄요. 그 사이에 금 가거나 깨지는 건 하나씩 교체하면서 세월을 겪어내야 진정한 기와가 완성되는 거죠. 근데 행여 그걸 잘못 만들었다고 보시는 분들도 있을까 걱정됐죠.”

―말씀대로 기와는 흙과 나무에 따라 다 다르다면서요.

“기와 작업은 사람이 하는 일은 50%밖에 안 돼요. 불 때는 나무가 40%, 흙이 10%입니다. 셋이 조화를 이뤄야 제대로 된 기와가 나옵니다. 무슨 흙을 어떻게 섞느냐, 소나무를 때느냐 편백나무를 때느냐에 따라 굳기도 색도 달라집니다. 가마 온도를 전체적으로 균일하게 맞추는 건 수십 년 경험을 쌓아야 가능하죠. 이젠 제자들도 믿고 맡길 정도까지 된 게 다행입니다.”

―제와에 관심 있는 후학들에게 당부할 게 있을까요.

“뭐든 욕심부리지 말라고 하고 싶네요. 문화유산을 보수하고 지키는 것도 결국 사람과 사람 간의 일입니다. 서로 대화하며 물 흐르듯 해야 해요. 독불장군처럼 굴면 아무것도 되지 않죠. 하나 더 보태자면, 기본을 지키는 겁니다. 좋은 흙을 찾고, 좋은 나무를 쓰고, 정성껏 가마를 때면 결과는 나옵니다. 괜히 이것저것 딴거 하려 들면 문제가 발생해요.”

―정전이나 숭례문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하고픈 말은 없나요.

“딱히 그런 게 있겠습니까. 각자 마음대로 즐기시면 되죠. 그저 ‘좋네’ ‘괜찮네’ 하고…. (김 제와장은 잠시 울컥했다.) 혹시라도 고생한 사람들이 있겠구나 여겨주시면 고마운 거죠. 스승님 묘가 장흥 작업장에서 멀지 않습니다. 정전 기와 작업 끝나고 술 한 잔 따라 드리며 절 올렸어요. ‘그 힘겨운 세월 동안 스승님이 버텨주신 덕에, 저도 이어받아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삽니다’ 하고요. 앞으로도 제 힘이 필요한 곳이면, 지금까지 배운 대로 지금까지 공부한 대로 보탬이 되면서 살겠습니다.”

김창대 제와장(製瓦匠)

△1972년 부산 출생
△1990년 부산공예고 도예과 졸업
△1997년 부산동의공업대 산업디자인과 졸업
△2009년 한국전통문화대 졸업
△2009년 국가무형유산 ‘제와장’ 전수교육조교
△2019년 제와장 보유자 인정


정양환 문화부장 ray@donga.com·이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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