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패질하는 사람들’(1875년·사진)은 카유보트의 초기 대표작이다. 그림에는 파리 중산층 아파트 실내에서 세 명의 노동자가 바닥에 대패질하고 있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윗옷을 입지 않아 노동으로 단련된 건장한 몸이 그대로 드러난다. 오른쪽 탁자 위에는 이들의 목을 축여줄 붉은 포도주가 놓여 있다.
파리의 부유한 상류층 출신인 카유보트는 원래 변호사였으나 화가가 되기 위해 뒤늦게 국립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다. 그러나 보수적인 아카데미 화풍에는 금세 싫증을 느꼈다. 카유보트는 대상을 미화하지 않고 현실을 보이는 그대로 그리고자 했다. 전통적인 사실주의에 기반해 그렸지만 실험적인 인상주의 기법과 주제도 과감하게 받아들였다. 이 그림은 1875년 파리 살롱전에 출품됐다가 거부당했다. 농민이나 시골 노동자를 미화해서 그린 화가들은 있었지만, 이렇게 도시 노동자를 사실적으로 그린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비평가들은 “저속한 주제”라고 혹평했다.
카유보트는 낙담하지 않았다. 이듬해 열린 제2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이 그림을 다른 작품들과 함께 출품했다. 화가로서 첫 데뷔전이었다. 다행히 우호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동료 화가들조차 여전히 그를 아마추어 화가로 여겼다.이 그림이 재평가받은 건 작가 사후 70년이 지나서였다. 후대의 미술사가들은 19세기 말 도시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포착한 그림이자, 도시 노동자를 그린 최초의 그림 중 하나라고 칭송한다. 그러니까 당대 비평가들의 시각이 저속한 것이지, 화가가 선택한 노동자란 주제는 시대를 앞서간 혁신이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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