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전체가 거대한 쇼룸…세계 디자인 수도로 변신한 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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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밀라노는 세계의 디자인 수도로 변신한다. 전 세계 거물급 브랜드들이 밀라노 한복판의 옛 궁전과 대저택, 갤러리와 스튜디오 등을 임대해 쇼케이스를 열고, 도시 전체는 거대한 전시장이 된다.

매년 4월 열리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전 세계 디자인, 가구, 인테리어 업계를 들썩이게 하는 행사다.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1)’라는 가구 박람회가 핵심이고, 밀라노 시내 곳곳에서 장외 전시가 열린다. 전 세계 디자인 관련 브랜드들 총출동해 존재감을 부각하는 행사로 올해는 4월 8일부터 13일까지 열렸다. 이 기간 밀라노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디자이너와 비즈니스 관계자로 도시 전체가 뒤덮인다. 가구와 리빙뿐만 아니라 패션, 자동차, 럭셔리 등 분야를 막론하고 디자인 영감을 얻기 위한 발길이 이어진다. 살로네 측은 13일 폐막한 올해 박람회에 모두 30만 2,548명이 방문했으며, 그중 68%는 해외 관람객들이라고 밝혔다.

 International Furniture Exhibition, Kartell, Pav. 22 – A01, Fiera Milano, Rho, Salone del Mobile.Milano 2025 / 사진. ©Andrea Mariani

International Furniture Exhibition, Kartell, Pav. 22 – A01, Fiera Milano, Rho, Salone del Mobile.Milano 2025 / 사진. ©Andrea Mariani

밀라노 경제를 떠받치는 6일

살로네는 단 6일간 열리는 행사지만, 밀라노 도시 전체가 이 시기를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 밀라노가 벌어들이는 경제적 이익과 문화적인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디자인 이코노미 시스템과 밀라노 폴리테크니코가 공동 발표한 2024년 연구에 따르면, 이 박람회는 약 2억 7,500만 유로(한화 약 4,500억 원)의 경제 효과를 창출했다. 단순히 박람회 자체뿐 아니라 도시 전역에서 펼쳐지는 부대 행사까지 포함한 수치다. 하루 750억 원 넘게 벌어들이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행사다.

세계 디자인의 중심, 살로네의 특별함은?

살로네 델 모빌레의 특별한 점은 뭘까. 6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 그리고 밀라노라는 도시와의 유기적인 연결성에 있다.
1961년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로 시작해 60여 년 넘게 명성을 쌓고 효과를 입증해 온 박람회다. 초반에는 가구 박람회로 시작했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조명, 가전, 식기, 인테리어 등 공간에 관한 모든 전시로 외연을 확장했다. 가구 박람회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오랜 역사에서 오는 아우라가 있고, 업계 관계자들의 주목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다.

First Entries, 63rd Salone del Mobile.Milano, South Gate, Fiera Milano, Rho / 사진. ©Giulia Copercini

First Entries, 63rd Salone del Mobile.Milano, South Gate, Fiera Milano, Rho / 사진. ©Giulia Copercini

First Entries, 63rd Salone del Mobile.Milano, South Gate, Fiera Milano, Rho / 사진. ©Diego Ravier

First Entries, 63rd Salone del Mobile.Milano, South Gate, Fiera Milano, Rho / 사진. ©Diego Ravier

도시 DNA와 박람회의 유기적 연결

살로네는 밀라노라는 도시의 유산을 적극 활용했다. 도시가 지닌 특별한 건축물, 문화유산들과 박람회장의 경계를 허물고, 도시 전체를 박람회장으로 만들었다.

밀라노 시내에서 차로 30분가량 이동해야 하는 박람회장은 디자인 영감을 얻는 출발점이다. 전 세계 주요 브랜드들이 올해 어떤 디자인을 내놨는지 쭉 훑어보고 트렌드를 짚기 위한 기초 조사가 이뤄진다. 사실 2,000개 이상의 브랜드를 다 둘러볼 수도 없고, 사전에 리스트 업을 하고 움직여도 역부족이다. 실제 업계 관계자들은 1~2일 정도 박람회장에 머물고, 나머지 일정은 밀라노 시내의 장외 전시와 쇼룸을 둘러보는 것이 코스다. 박람회는 밀라노가 앞으로 줄 영감의 시작점이자 뼈대, 시내 전역으로 연결된 디자인 브랜드들의 쇼룸과 이벤트들은 축제의 나머지를 완성해 줄 완벽한 퍼즐이다.

Vernissage, Via Dante, Milano, Salone del Mobile.Milano 2025, Dentsu Creative Italia / 사진. ©Andrea Mariani

Vernissage, Via Dante, Milano, Salone del Mobile.Milano 2025, Dentsu Creative Italia / 사진. ©Andrea Mariani

도시 전역이 쇼룸

장외 경험이 매력적인 것은 밀라노라는 도시의 유산(헤리티지) 덕분이다. 밀라노 대성당, 브레라 미술관, 스포르체스코 성 등 문화유산이 도심 곳곳에 남아있다. 그리고 이탈리아 북부 핵심 도시로 유독 궁전, 대저택, 바실리카 등 화려한 건축물이 많다.

도시의 역사적, 예술적 공간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고, 그 사이사이 거리를 현대의 디자인 브랜드들이 채우고 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도시가 바로 밀라노다.

장외에선 브레라 디자인 지구만 둘러봐도 하루가 훌쩍 간다. 전체 200여 개 브랜드의 가구 디자인 인테리어 관련 쇼룸이 자리를 잡고 있고, 골목골목 숨어있는 갤러리 스튜디오 등이 발길을 사로잡는다. 그중 아르마니, 플로스, 무이, 폴리폼 등의 쇼룸은 관람객들이 줄 잇는다. 밀라노의 문화유산과 동시대 브랜드가 유기적으로 잘 결합되어, 예술적인 공간을 형성했기 때문에 가능한 사용자 경험이다.

Elfo Puccini, Milano, Salone del Mobile.Milano 2025, “Thought for Humans.” Dentsu Creative Italia / 사진. ©Alessandro Russotti

Elfo Puccini, Milano, Salone del Mobile.Milano 2025, “Thought for Humans.” Dentsu Creative Italia / 사진. ©Alessandro Russotti

밀라노, 닫힌 문 너머의 놀라움

밀라노는 유독 프라이빗 공간이 많다. 그 문을 열면 놀라운 공간이 있지만, 초행자는 도무지 어디를 가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숨은 장소를 브랜드 행사장으로 연결해 주는 서비스가 있을 정도다. 궁전, 대저택, 공공건물, 폐교, 종교 시설, 수영장 등도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18세기 나폴레옹이 거주했던 궁전 ‘팔라초 세르벨로니’에서는 루이비통의 ‘오브제 노마드’ 전시가 열린다. 밀라노의 건축 유산이 현대 디자인과 만나 완성된 독특한 경험이다.

도시를 디자인한다는 통 큰 상상

살로네 델 모빌레를 직접 경험해 보면, 박람회를 넘어 도시를 디자인해 온 그들의 배포에 놀라게 된다. 살로네의 지향은 이미 물건, 가구, 건축, 예술 작품 등의 유형의 대상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이들이 생각하는 디자인은 밀라노라는 도시 전체의 미감을 끌어올리고, 도시 전체의 헤리티지를 만드는 개념이다. 마리아 포로 살로네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도시의 문화적 사건들을 주도하고 있으며, 오래도록 남을 유산을 만드는 중입니다.”

Maria Porro / 사진. ©Guido Stazzoni

Maria Porro / 사진. ©Guido Stazzoni

밀라노=조민선 아르떼 객원기자

1) 매년 2000개 이상의 업체들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가구 박람회. 밀라노 도심의 북서부에 위치한 로 피에라의 169,000㎡ 규모 전시장에서 열린다. 가구 및 리빙 트렌드와 전시를 볼 수 있는 행사. 1961년 시작됐고 올해 63회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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