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국가 꿈꾸는 ‘중동의 집시’… 이란내 反정부 운동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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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이란 전쟁]
‘세계 최대 유랑민족’ 쿠르드족
튀르키예-이란 등에 흩어져 거주… 이스라엘 “독립 지지” 무기 지원
1차대전 참전땐 이용만 당해

얼굴을 가리고 총으로 무장한 쿠르드 민병대. 만비즈=AP 뉴시스

얼굴을 가리고 총으로 무장한 쿠르드 민병대. 만비즈=AP 뉴시스
“쿠르드족에겐 ‘산’을 제외하면 친구가 없다.”

기원전 3세기부터 단 한 번도 독립 국가를 건설하지 못한 채 중동 산악 지대를 떠도는 쿠르드족의 구슬픈 신세를 일컫는 표현이다. ‘세계 최대의 나라 없는 민족’인 이들은 오랫동안 튀르키예 남동부, 이라크, 시리아 북부, 이란 북서부 등에 흩어져 거주해 왔다. 이런 특성 때문에 ‘중동의 집시’로도 불린다. 고유 언어인 쿠르드어를 쓰며, 대다수가 수니파 무슬림이다.

전체 인구는 약 3000만∼4000만 명으로 추정된다. 튀르키예에 약 1500만 명, 이란에 약 800만 명, 이라크에 약 500만 명, 시리아에 약 200만 명이 있다. 중동 내에서 드물게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한 편이며 각국 쿠르드족 민병대에도 적지 않은 여성이 포진해 있다.

쿠르드족은 19세기 이후 줄곧 열강과 지역 내 강대국에 이용당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립국을 건설해 주겠다는 영국을 믿고 오스만튀르크(튀르키예)에 대항했으나 1923년 로잔 조약으로 이 약속이 폐기됐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 또한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탄압받던 이라크 내 쿠르드족을 지원하며 이라크 내 사회 분열을 부추겼다. 전쟁이 끝나자 이란 또한 쿠르드족을 외면했다.

쿠르드족과 이란의 갈등은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본격화했다. 쿠르드족은 당시 옛 소련의 도움으로 1946년 초 이란 북서부 마하바드 일대에 최초의 쿠르드족 자치 공화국이자 소련의 위성국가 성격이 강했던 ‘마하바드 공화국’을 건립했다. 다만 이 공화국은 같은 해 이란 정부군에 의해 붕괴됐다. 마하바드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카지 무함마드 또한 처형됐다.

그럼에도 쿠르드족은 최근 ‘히잡 의문사 시위’ 등 이란 내 반(反)정부 운동의 핵심 세력으로 부상했다. 2022년 9월 당시 22세이던 쿠르드 여성 마사 아미니는 친척을 보기 위해 고향인 이란 쿠르디스탄주 사케즈에서 수도 테헤란을 방문했다. 그는 테헤란에서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교 경찰에 구금당했고 사흘 후 의문사했다. 이에 반발해 촉발된 시위는 이란을 넘어 전 세계로 번졌다.

이란 내 쿠르드계 정당들은 지난해 12월 28일부터 고질적인 경제난에 항의하기 위해 발발한 반정부 시위에서도 서로 연대하며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세력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쿠르디스탄 민주당-이란, 쿠르디스탄 자유생활당 등 쿠르드계 주요 정당 5곳은 현 이란 정권의 전복 및 자치권 확보를 위해 ‘이란쿠르드정치세력연합(CPFIK)’을 결성했다. 이스라엘은 주변 이슬람 국가에 대항하기 위해 1960년대부터 쿠르드족을 지지했다. 이들이 거주 중인 이슬람 국가의 정부와 계속 갈등을 벌일 수 있도록 무기와 재정 지원 등을 한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017년 “쿠르드족의 독립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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