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시장에서 ‘대세 투자 수단’으로 자리잡은 상장지수펀드(ETF)를 활용하는 연금 투자자라면 수수료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연금 투자는 오랜 기간 투자가 이뤄지는 만큼 적은 비용 차이가 은퇴 시기에 큰 수익률 차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자산운용사가 내세우는 ETF 총보수뿐만 아니라 숨은 비용까지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숨은 비용을 포함하면 수수료율이 뒤바뀌는 경우가 있는 데다, 많게는 총보수가 63배까지 차이나기 때문입니다.
미국 대표지수 ETF, 총보수 최대 63배 차이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금계좌에서 가장 인기있는 미국 대표 지수형 ETF의 총보수는 연 0.0047%~0.3% 수준입니다. 동일한 구조의 상품인데도 총보수가 많게는 63배까지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총보수가 가장 낮은 상품은 KB자산운용의 'RISE미국S&P500'(연 0.0047%)입니다. 총보수 연 0.0047%는 ETF를 1억원어치 팔았을 때 연간 4700원 정도만 수익으로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운용비용과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남는 게 없는 수준입니다.
최근 ETF업계에서는 수수료 인하 경쟁에 다시 불이 붙고 있습니다. ETF업계 '투톱'인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선두 다툼 과정에서 총보수는 소수점 넷째 자리까지 내려갔습니다. 비용을 줄일 수 있으니 투자자에게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올초 삼성자산운용은 미국 대표지수형 ETF인 ‘KODEX 미국S&P500’과 ‘KODEX 미국나스닥100’의 총보수를 연 0.0099%에서 연 0.0062%로 내렸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TIGER 미국S&P500’과 ‘TIGER 미국나스닥100’의 총보수를 기존 대비 10분의 1 수준인 연 0.0068%로 낮추자 맞대응에 나선 겁니다.
기타비용 합친 'TER' 따져봐야
다만 자산운용사들이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이고 있는 ‘총보수’는 전체 ETF 수수료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기타비용과 매매·중개수수료까지 더한 게 투자자가 실제로 부담하는 금액입니다. 이들 수수료는 ETF 가격에 녹아 있습니다. 투자자가 ETF를 사거나 팔 때 이를 별도로 납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ETF에 투자할 때 자산운용사들이 홍보하는 총보수뿐 아니라 총보수와 기타비용을 더한 ‘총보수비용(TER)’을 비교해봐야 합니다. 총보수는 낮지만 기타비용이 높아 오히려 총수수료가 더 높아지는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SOL 미국S&P500’의 총보수는 0.0099%이고, ‘ACE 미국S&P500’의 총보수는 0.07%입니다. 총보수만 보면 ‘SOL 미국S&P500’의 수수료가 더 낮아 보이지만, 이 둘의 TER은 0.14%로 동일합니다.
ETF 상품 간의 수수료 차이는 소수점 단위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간극은 크게 벌어집니다. 같은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이더라도 어떤 자산운용사의 상품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수수료가 10년에 수십만원씩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S&P500을 추종하는 ETF에 1000만원을 10년간 투자한다고 가정할 때, TER이 가장 낮은 ‘TIGER 미국S&P500’은 총 10만8000원의 수수료가 부과됩니다. 반면 TER이 가장 높은 ‘HANARO 미국S&P500’의 수수료는 ‘TIGER 미국S&P500’보다 76만원 많은 86만8000원을 내야 합니다.
정률제인 총보수와 달리 기타비용과 매매·중개수수료는 사후에 확정되기 때문에 투자 전에 정확한 수수료율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수수료를 최소화하려면 규모가 큰 ETF를 고르는 게 유리합니다. TER 비율을 ETF 순자산으로 나눠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상장 초기에 기타비용과 매매·중개수수료가 많이 드는 만큼 상장된 지 1년이 넘은 ETF에 투자하는 것도 수수료를 절약하는 방법 중 하나로 꼽힙니다.
환헤지 여부도 장기 수익률에 직결
ETF의 환헤지 여부도 수익률에 큰 차이로 이어집니다. 글로벌 정세 불안으로 환율 변동성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환헤지형 ETF는 환율의 변동성을 제거해서 환율 영향을 받지 않고 투자할 수 있는 상품입니다. 환노출형 ETF는 투자국 환율 변동성에 영향을 받는 상품으로 구조가 반대죠. 환헤지형 ETF는 상품명 뒤에 ‘(H)’가 붙어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미국 대표지수형 ETF의 경우 장기투자 상품이기 때문에 환노출형에 투자하는 게 유리하다고 조언합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미국 대표지수형 ETF에 투자하는 것은 미국 경제의 장기 성장성에 투자하는 셈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환노출형에 투자하는 게 낫다”며 “환헤지 비용 역시 양국 간 기준금리 차이만큼 나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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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