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發 초과세수로 미래 투자 방향 옳아
성공한 국부펀드, 확충과 운용 원칙 확실해
기금은 재원-활용 기준-투자대상 아직 모호
‘반도체 피크 아웃’까지 내다보고 설계해야
이런 논의는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가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을 본떠 한국형 국부펀드를 만들겠다고 보고한 것에서 시작됐다. 이후 올해 1월 기재부가 기획처와 재정경제부로 갈라지면서 계획에 일부 혼선도 있었다. 현재는 미래대응기금이 예상보다 많이 걷힌 세금을 별도로 적립해 장기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 것으로 정리된 듯하다. 다만 미래 투자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만 밝힌 터라 구체화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정부가 본보기로 삼은 나라들은 하나같이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정부연기금(GPFG)’의 경우 전입과 활용 규칙을 명확히 하고 있다. 북해 유전 개발이라는 횡재로 정부가 석유 부문에서 손에 쥔 순 현금 흐름이 전액 기금으로 들어가도록 법에 명시함으로써, 기금에 얼마를 넣을지 자의적으로 정하지 않도록 했다. 기금 사용은 평균적으로 기금 가치의 3% 안팎에 맞추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3%는 기금이 물가상승분을 빼고 벌어들일 것으로 기대되는 수익률이다. 원금은 두고 이자만 쓰겠다는 발상이다. 그렇게 기금에서 뺀 자금은 특정 분야에 미리 배정하지 않고 일반 예산의 구멍을 메우는 데 쓴다. 그 덕에 석유 수입이 요동쳐도 재정 지출은 같은 폭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국가 전략산업을 뒷받침하는 성공 모델인 싱가포르 테마섹도 효율적인 운용 구조를 갖추고 있다. 테마섹은 1974년 정부로부터 3억5400만 싱가포르달러 상당의 기업 지분을 넘겨받아 출범했다. 이에 해마다 세금을 자동으로 밀어 넣는 구조는 아니다. 테마섹은 기금이 아니라 정부가 소유한 투자회사다. 하지만 이사회에 정부가 지명한 이사가 없고, 정부도 테마섹의 개별 투자 결정에 관여하지 않아 투자의 자율성이 보장된다.이처럼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해외 국부펀드와 비교하면 우리 정부의 미래대응기금 설계는 가야 할 길이 멀다. 첫째, 기금 확충 방식이 자의적이다. 지금은 반도체 호황으로 더 걷힌 세수를 기반으로 한다고 하지만, 일시적인 호황이 끝나면 무엇으로 채울지, 매년 얼마를 넣을지 정하는 규칙이 없다. 현재 정부 구상에 따르면 미래대응기금은 경기를 타는 세수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기금 활용에 대한 규칙이 없다. 기금은 예산과 달리 특정 재원을 특정 목적에 묶어 별도로 운영하는 통장이다. 국회가 매년 운용계획과 결산을 심사하지만, 연중 운용계획 변경에는 일정 범위에서 일반회계 예산보다 정부 재량이 크다. 규칙 없는 기금은 국회 심사를 거치는 추가경정예산을 대신하는 우회 통로가 되기 쉽다.
셋째, 기금 운용 기준이 모호하다. 미래대응기금이 정책사업에 돈을 지출하는 기금인지, 투자 수익을 추구하는 자산운용기금인지 성격이 불분명하다. 성장동력, 청년, 지방, 인재라는 정책 목적과 수익 추구가 충돌할 때 무엇이 우선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이 없다. 더욱이 현재의 미래대응기금 설계가 법제화된다면 중복 투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출시한 국민성장펀드와 한국투자공사(KIC)에 신설하는 전략투자계정은 반도체와 AI, 우주항공 등에 자금을 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미래대응기금은 성장동력을 4대 분야의 하나로 내세웠다. 미래대응기금 역시 반도체와 AI, 우주항공 등에 대한 지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재원의 출처만 다를 뿐 향하는 곳은 유사하다면, 민간이 할 투자를 정부 돈이 밀어내고 성과가 나빠도 누구의 책임인지 가릴 수 없다.이런 우려를 해소하고 반도체 피크 아웃(정점 기록 후 하락) 시대를 대비해 미래대응기금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에 주목해야 한다. 우선, 노르웨이처럼 매년 얼마를 넣을지에 대한 공식을 법에 못 박고, 반도체 경기 호황이 끝난 뒤의 재원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둘째, 빼 쓰는 한도를 5년 단위의 중기 재정 준칙에 연동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유사한 목적의 기금과 펀드를 조율할 컨트롤타워를 세우고 이들 간 역할 분담을 법으로 정해야 한다. 미래대응기금의 출범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과 규칙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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