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하상응]“누가 미국 국민인가”… 시험대 오른 미국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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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선언, 국민의 권리 국가 존재 근거 제시
시민권 넓히며 자유-개방-포용 국가로 성장
트럼프 정부, 이민 단속 강화 등 배타성 확대
포용의 가치, 미국 민주주의 미래의 분수령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776년 7월 4일 발표된 미국 독립선언문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생명과 자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했다. 국민의 권리를 국가 존재의 근거로 제시한 이 문구는 오늘날 근대 민주주의의 보편적 원칙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선언은 처음부터 모순을 안고 있었다. ‘모든 인간’에 흑인 노예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유를 선언하며 건국했지만, 동시에 “누가 미국 국민인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독립과 건국 과정에서 해결하지 못한 이 모순은 결국 1861년 남북전쟁으로 이어졌다. 이 전쟁은 단순히 연방과 주의 권한을 둘러싼 충돌이 아니라 “누가 미국 국민인가”라는 질문에 미국이 답하는 과정이었다. 남북전쟁 이후 노예제가 폐지되고 수정헌법 제14조가 제정되면서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원칙이 확립됐다. 이후 이 조항은 미등록 이민자와 임시 체류자의 자녀에게까지 적용되며 미국 사회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기반이 됐다. 흑인에게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는 과정은 결과적으로 미국 시민권의 범위를 넓혀 왔다. 흑인 인권운동가 프레드릭 더글러스가 1852년 “7월 4일의 독립은 흑인에게는 축제가 될 수 없다”고 절규했던 미국은 오랜 갈등과 희생을 거치며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의 범위를 꾸준히 확대해 왔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이러한 흐름에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이전보다 배타적인 답을 제시한다. 대규모 미등록 체류자 추방을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하면서 연방 차원의 이민 단속을 강화하고 있고,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출생시민권 적용 범위를 축소하겠다고 밝히면서 수정헌법 제14조의 해석을 둘러싼 헌법 논쟁을 낳았다. 이에 더해 영주권과 시민권 취득 심사를 강화하고, 난민·망명 제도를 개편하며 일부 대학과 지방정부의 이민자 보호 정책 등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논란은 투표권 문제로도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선거에서 시민권자가 아닌 사람의 투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유권자 등록 과정에서 시민권 증명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여권과 운전면허 자료, 사회보장번호, 이민 기록, 귀화 시민권 정보 등을 연계해 시민권 유무를 확인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지지자들은 선거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반대 진영은 합법적인 유권자의 참정권까지 위축시키고 이민자와 소수인종을 정치 과정에서 배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250년 전 미국은 자유를 선언했지만, 그 자유는 모든 사람에게 허용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역사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의 범위를 다른 나라가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늘려 왔다. 이민자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소수자의 권익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거듭난 미국은 결국 혁신과 포용을 주도하는 위대한 나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을 ‘나의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현재 정치권력을 쥐고 있다.

미국은 다시 “미국인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다. 과연 닫힌 미국에서 여전히 혁신이 가능할 것인가? 열려 있던 사회를 닫을 때 생기는 사회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닫힌 미국을 위대한 나라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은 결국 미국 민주주의가 지난 250년 동안 지켜온 가치와 방향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가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이 양극화된 정치 상황에서 악화 일로로 치닫는 데에 있다. 정치적 타협으로 풀 수 있는 문제를 굳이 법을 동원해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하는 정치의 사법화, 중립적인 입장에서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하는 법원이 정치권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사법의 정치화는 백인 개신교도의 미국과 소수인종 및 이민자의 미국 간의 절묘한 균형을 깨뜨린다. 전통적인 미국인의 모습을 동경하는 사람은 극우 반동으로 몰리기 일쑤고, 소수자의 권익 보호에 매진하는 사람은 급진 좌파로 매도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러한 모습은 1776년 독립을 선언한 미국인들이 바랐던 이상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이달 4일(현지 시간) 독립 250주년을 맞아 미국 방방곡곡에서 터진 다양한 색과 모양의 불꽃은 1782년 미국 국장에 새겨진 “여럿으로 이루어진 하나(E Pluribus Unum)”를 연상시킨다. 미국 민주주의는 지금도 250년 전 독립선언문이 던졌던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그 답은 앞으로 미국 민주주의는 물론 세계 민주주의의 향방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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