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마을은 백담사 설악무산스님이 1996년 만해 한용운 선생의 자유, 평화, 평등, 생명 존중 사상 선양을 목표로 만해대상을 제정하고 1999년 백담사에서 만해축전을 열면서 축전에 모인 사람들을 위해 기념관 공간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데서 시작됐다.
무산스님은 처음에는 만해의 ‘卍’자를 본뜬 평면에 12층 높이 기와집을 설계했는데, 일반 건물과 같은 느낌으로는 그것이 만해기념관이 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건물 용도만으로 건물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만해의 분위기에 맞는 건물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전남 담양에 정토사 무량수전 건물을 지어 건축상을 받는 등 불교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종교건축물의 모범을 보여온 건축가 김개천 국민대 교수에게 설계를 맡긴다.
첫 요구 조건은 만해축제 행사를 할 수 있게 1000명 정도의 사람이 들어갈 광장을 조성하고, 그에 따른 서비스 공간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예산 60억원, 무산스님은 김개천 건축가에게 모든 것을 알아서 하라고 하고 준공 때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주먹구구식 요청이었지만 김 건축가는 불교 건축을 다뤄봤고, 자연 속 건축물에 나름 정통한 선(禪)건축가로 알려졌기에 그의 비전에 따라 건물을 설계할 수 있었다.
그는 3·1운동 당시 마지막까지 뜻을 굽히지 않은 만해 한용운 선생의 삶과 예술적인 문학의 세계를 대지를 관통하는 강한 직선 통로로 시각화했다. 주차장에서 마을로 들어서면 절에 들어갈 때와 비슷한 일주문 같은 콘크리트 결절문을 거쳐 새로운 영역에 들어간다는 느낌을 줬고 좌우에 문인의 집, 깃듸일 나무의 집, 만해문학박물관이 배열돼 전체적으로 일직선의 마을 분위기를 조성했다. 건물들이 줄지어 직선의 느낌을 주는 통로는 강직한 성품을 의미한다. 예산 절감의 효과도 있지만 건물은 대부분 무채색, 회색 콘크리트로 돼 있어 승려들이 입는 회색 승복처럼 사찰의 무색무취한 의미가 발현되는 것 같다.
그는 만해마을은 기념관이면서도 하루나 며칠 설악의 자연과 함께 지내며 만해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지 중앙에 기념관이 아니라 허공에 떠있는 일획 같은 단순한 법당을 배치해 이곳을 방문한 사람은 누구나 들어와 명상할 수 있고, 승려 혹은 자기 자신과 무언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만들려고 했다.
또 그는 건축을 “자연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말한다. 자연과 건물의 소통을 중시해 건물 1층에 서면 건물 앞뒤가 외부로 트여 있어 반야심경의 한 구절인 ‘색즉시공, 공즉시색’처럼 건물이 있는 듯 없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문인의 집 1층 강당 뒷면 커튼을 열면 소나무가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사물의 본질은 비어있기도 하다는 ‘색즉시공’의 의미를 건축물에서 보여주고 있다.
예수마을과 만해마을 두 곳 건물은 불교와 기독교 사이의 교리적 차이도 있지만, 설계를 담당한 건축가의 건물 주제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에 따라 정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무소유, 자연과의 소통을 중시하며 건물을 무표정하게 디자인한 만해마을은 사람을 유혹하는 화려한 모습은 없다. 무언가 침착하고 단아한 느낌을 준다. 이것을 만해의 분위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건축가가 그렇게 해석한 것이고, 이를 구경하는 관람자들은 알게 모르게 그 영향을 받는다.
건물의 특징은 건물이 처음 지어지는 목적과 그에 따라 선정된 건축가의 특성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만해마을과 예수마을은 그 이름의 차이처럼 정말로 건물에는 주제라는 것이 존재하며, 그 주제가 무엇인가에 따라 건물에 살고 있거나 건물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반응하는 느낌이나 태도가 많이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또 그것을 위해, 어떤 특정의 목적을 위해, 어떤 분위기를 주기 위해 우리가 건물을 그렇게 만들어갈 수도 있음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