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실수는 경비병이 한눈팔다가 무의식적 욕구가 의식 쪽으로 경계를 넘는 것을 놓친 상황과 같습니다. 사실과 현실에 기반을 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의 통제에서 벗어나면서 일어날 결과를 헤아리지 못하고 그냥 넘어 버린 겁니다. 그렇다면 말실수가 온전히 무의식의 작용일까요? 그 말이 일으킬 파장을 의식하면서도 참지 않고 말해 버리는, 의도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지나치면 말실수를 가장해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려는 공격이 됩니다.
칼이 몸에 상처를 낸다면, 말은 마음에 상처를 냅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은 흘려들어도 “혀 아래 도끼 들었다”는 서늘합니다. 말이 지닌 공격성과 파괴성을 깨달아 조심하기에 마땅합니다.
말로 입은 마음의 상처도 치료가 필요합니다. 첫째, 분노나 수치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내 마음을 압도하기 전에 상대방이 내게 한 말을 의문문 형태로 물어보고 확인합니다. “방금 ∼라고 내게 말하셨나요?”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둘째, 그 말을 듣고 느낀 내 감정을 그 사람에게 솔직하게 전달합니다. 셋째,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를 물어보고 확인합니다. 넷째, 진심으로 그 사람이 사과하면 받아줍니다. 사과를 받아도 한동안 관계가 서먹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다섯째, 그 사람과의 관계나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빙 둘러서 말하거나 다른 기회로 미루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여섯째, 그 사람이 말실수를 다시 악의적으로, 되풀이한다면 관계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 사람을 내가 고칠 수는 없습니다.그 사람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더라도 우선 먼저 꼼꼼하게 들어야 합니다. 진정한 사과와 변명 늘어놓기는 본질이 다릅니다. 사과는 상처를 받은 나를 위한 것이고 변명은 상처를 준 그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사과의 말’에 담긴 맥락을 분석해야 진정함을 감별할 수 있습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라고 상대방이 아무리 주장해도, 조건을 붙인다면 사과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말입니다. “제 말에 상처를 받으셨다면”이라고 하면 “굳이 그 정도 말에 상처를 받았다면”이라는 뜻입니다. 변명입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저지른 ‘말실수’에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다면 꼭 사과를 받고 싶으신가요? 그럴 필요가 반드시 있으신가요? 이미 조각조각 깨진 접시와 같지 않나요? 상대방이 사과를 거부한다면? 사과할 때까지 감정을 애써 다스리면서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낼 가치가 있을까요?
말실수는 듣고 가볍게 반응하고 무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책입니다. 마음에 입은 상처가 뼈저리게 깊어서 상대방을 어떻게 해서라도 응징하고 싶은 심정에 공감은 가지만 그러할수록 써야만 할 것과 얻을 것을 대비해 냉철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스스로 노력해서 내 가치를 올려 격차를 벌려야 생산적입니다. 내가 흔들리지 않으면 그 사람은 무색해지고, 스스로 내가 흔들려서 중심을 잃으면 내 삶을 낭비하는 함정에 빠집니다. 어수선하게 만든 후에 말실수였다고 지나가려는 사람은 자신의 무의식적 욕구를 통제하지 못하는 애처로운 사람입니다. 세상이 자신을 잊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비난의 대상이 되더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애씁니다. 해결책은? 관심을 끊고 무시해서 잊히게 하면 됩니다. 대화로 풀려고 하는 순간 말려듭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하는 생각 자체를 생각해 볼 능력이 부족하니 소통할 대상이 아닙니다. 상대방 입장을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니 소통은 더욱 불가능합니다. 내가 좋은 뜻으로, 사람다운 마음으로 관계를 유지해도 갈등만 계속되고 결국 나 자신이 지치면서 힘을 잃습니다. 삶이 헛되이 쓰이게 됩니다.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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