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어른이 된 아이들…질병∙빈곤 겹친 ‘복합위기가정’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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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여기 조심하세요.”

6살 윤성준 군은 집 안에서도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걷는다. 문턱 앞에서는 먼저 걸음을 멈추고, 좁은 길목에서는 어머니가 벽에 부딪히지 않도록 방향을 알려준다.

엄마의 눈을 대신해 주는 6살 성준이

돌봄을 받아야 할 나이의 아이들이 가족을 돌보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가족의 질병과 장애, 경제적 어려움, 주거 불안이 한꺼번에 겹친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집안일과 간병, 생계 보조까지 떠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길을 안내하는 성준이. 굿네이버스 제공.

어머니의 손을 잡고 길을 안내하는 성준이. 굿네이버스 제공.

성준 군의 어머니는 뺑소니 사고로 시력을 잃고 뇌병변 장애 판정을 받았다. 별다른 보상을 받지 못해 치료비 부담도 이어지고 있다. 함께 사는 할머니도 건강이 좋지 않다. 허리와 무릎 수술을 받았고, 뇌질환과 심장 기능 저하도 겪고 있다. 남아 있는 무릎도 수술이 필요한 상태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을 이어가고 있다.

성준 군은 할머니를 도와 집안일도 거두며 “할머니는 다리가 아프고 엄마는 사고로 다쳤거든요. 나만 튼튼하네”라고 말한다.

세 식구의 수입원은 멸치 손질 부업이다. 어머니가 손끝으로 멸치 머리를 떼면 성준 군은 옆에서 내장을 빼 상자에 담는다. 스스로를 ‘멸치 박사’라고 부를 만큼 손놀림도 익숙해졌다.

세 사람이 하루 종일 멸치를 다듬어 상자 하나를 채우면 받는 돈은 6000원 수준이다. 생활비와 병원비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한 금액이다. 할머니가 멸치를 팔면 무엇을 사 주면 좋겠느냐고 묻자 성준 군은 “고기 사 주세요”라고 답했다.어머니는 아이가 앞으로 더 많은 돌봄 부담을 떠안게 될까 걱정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제가 성준이한테 짐이 될까 봐 너무 두렵다”고 말했다.

질병·빈곤·주거 불안… ‘복합위기’ 속 아이들

가족의 질병과 장애, 빈곤, 돌봄 부담이 한 가정 안에 겹치는 상황을 현장에서는 ‘복합위기’로 본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 아동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는 아동은 일반 아동보다 스트레스와 우울 수준이 높고, 물질적 결핍과 박탈 정도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삶의 만족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경향을 보였다.

복합위기가정에서는 한 가지 어려움이 다른 문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가족의 건강 악화는 의료비 증가와 생계 불안을 불러오고, 경제적 어려움은 돌봄 공백과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족의 건강을 바라는 7살 선오의 꿈

비슷한 상황은 선오 군 가정에서도 나타난다. 7살 선오 군은 하반신 마비로 거동이 어려운 아버지의 휠체어 이동을 돕고, 사고로 한쪽 손 사용이 불편한 어머니를 보조하고 있다.

선오 군은 “엄마는 손이 불편하고, 아빠는 다리가 불편해서 제가 어릴 때부터 도와주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휠체어 이동을 돕는 선오와 어머니. 굿네이버스 제공.

아버지의 휠체어 이동을 돕는 선오와 어머니. 굿네이버스 제공.

선오 군 가족의 주거 환경도 열악하다. 집은 휠체어가 이동하기 어려울 만큼 좁고, 보일러 고장으로 가스레인지에 물을 데워 씻고 있다.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새고, 벽과 바닥에는 누수 자국과 곰팡이가 남아 있다.아버지는 신장 기능이 20%만 남은 데다 심혈관 질환도 앓고 있지만, 의료비 부담으로 치료를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휠체어 수리 기술을 배우고 있다. 그는 “내년에 선오가 학교에 들어가는데, 책가방이랑 필통은 꼭 사주고 싶다”며 작은 바람을 전했다.

아픈 오빠 곁을 지키는 9살 예진이

9살 소예진 양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장 먼저 오빠 수현 군을 찾는다. 12살 수현 군은 희귀난치병인 듀센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다. 근육 기능이 점차 약해지는 질환으로, 수현 군은 혼자 걷기 어렵고 폐렴으로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는 두 아이를 홀로 돌보고 있다. 장기 치료가 필요한 수현 군의 병원비가 계속 발생하면서 가계 부담은 커졌고, 예진 양이 가족을 돕는 시간도 늘어났다. 설거지를 하거나 오빠의 머리를 말려주는 일은 예진 양의 하루 일과가 됐다.

어머니를 도와 오빠를 돌보는 예진이. 굿네이버스 제공.

어머니를 도와 오빠를 돌보는 예진이. 굿네이버스 제공.

어머니가 아픈 오빠를 먼저 챙길 때면 예진 양도 서운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오빠의 상태를 생각하면 그런 마음도 오래가지 않는다고 했다.

예진 양은 “오빠가 많이 아픈데 낫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의사가 돼서 오빠의 다리를 고쳐 줄 거예요”라고 말했다.


‘복합위기가정’…조기 발견과 지속 지원 필요

전문가들은 복합위기가정 아동의 어려움이 장기화될 경우 학업과 정서 발달, 사회적 관계 형성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따라 위기 상황을 조기에 발견하고 생계·의료·주거 지원뿐 아니라 심리·정서 지원까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굿네이버스는 창립 35주년을 맞아 다양한 위기를 겪고 있는 가정의 현실을 조명하는 휴먼다큐 ‘소원’을 기획해 방영했다.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총 4부에 걸쳐 아동 8명의 일상을 소개하며,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담았다.

전미선 굿네이버스 사무총장은 “사회가 변화하면서 가족이 겪는 어려움도 점점 더 복합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런 위기는 아동의 일상뿐 아니라 정서와 발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동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굿네이버스는 국내 위기가정지원사업을 통해 23만3360명을 지원했다. 굿네이버스는 앞으로도 위기가정 아동을 발굴해 생계·의료·주거 등 필요한 지원을 이어갈 계획이다.

굿네이버스는 성준, 선오, 예진이 가정과 같은 국내 복합위기가정 아동을 발굴해 생계·의료·주거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후원금은 복합위기가정 아동 지원에 우선 사용되며, 이후 위기가정지원사업을 포함한 국내 사업 및 아동 지원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 국내 위기가정지원사업 후원하기:
https://www.goodneighbors.kr/cmmn/url/260629_donga_pay.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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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기자 xunnio4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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