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비싼 여름휴가는 싫다… 가까운 곳에서 짧고 가볍게

9 hours ago 2

[트렌드 NOW]
최저가 기다리며 ‘즉흥 여행’ 선호… 도심 호캉스 ‘스테이케이션’ 급증
여행 대신 쇼핑몰에서 ‘몰캉스’… ‘어떻게 머물고 싶은가’ 초점 둬야

2025년 여름 직장인 김모 씨는 큰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이른 휴가를 계획했다. 하지만 출발을 일주일 앞둔 시점까지도 여행지를 정하지 못한 채 “아직 고민 중”이라는 대답을 반복했다. 숙소와 교통편 예약은 물론이고 맛집 리스트까지 모두 준비돼 있어야 할 시기인데 왜 이렇게 결정이 늦어지고 있을까?

최근 들어 사람들이 여름휴가를 준비하는 모습은 예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첫째, 멀리보단 가깝게, 계획적이기보다는 즉흥적으로 떠나는 휴가가 늘고 있다. 데이터 컨설팅 기업 PMI의 조사에 따르면 올여름 휴가 기간은 ‘3∼4박’(39.7%)과 ‘1∼2박’(38.2%)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짧은 여행이다 보니 계획을 미리 세우기보다는 막바지까지 기다리거나 최저가가 나오면 떠나는 ‘즉흥 여행’을 한다. 심지어 여행 날짜가 코앞까지 다가왔는데도 목적지조차 정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로이터는 올여름 미국인 여행객의 가장 큰 트렌드로 ‘할인 기다리기’를 언급했다. 에어비앤비 역시 소비자들이 가격이 더 떨어질 거라 기대하며 체크인 직전까지 예약을 미루고 있다고 설명한다.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지 않고 도심지 호텔이나 쇼핑몰에서 휴가를 즐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인천 영종도에 정식 개장한 ‘인스파이어 리조트’에는 몰입형 디지털 거리 ‘오로라’가 조성돼 있어 투숙객은 물론이고 방문객들의 눈길도 사로잡고 있다. 인스파이어 리조트 제공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지 않고 도심지 호텔이나 쇼핑몰에서 휴가를 즐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인천 영종도에 정식 개장한 ‘인스파이어 리조트’에는 몰입형 디지털 거리 ‘오로라’가 조성돼 있어 투숙객은 물론이고 방문객들의 눈길도 사로잡고 있다. 인스파이어 리조트 제공
둘째, 도심지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는 ‘스테이케이션’이 급증하고 있다. 스테이케이션은 ‘머물다(Stay)’와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휴가지 대신 일상 공간 근처에서 짧은 휴식을 즐기는 방식을 말한다. 온라인 플랫폼 놀유니버스에 따르면 5월 황금연휴 기간 서울, 부산 등 도심 호텔 예약률은 90%를 넘었다. ‘노잼’ 지역으로 여겨졌던 대전 지역 호텔 예약도 전년 대비 190% 증가했다. 지난해 정식 개장한 ‘인스파이어 리조트’처럼 숙박과 쇼핑, 공연을 결합한 복합시설들은 ‘하루로는 부족한’ 체류형 여행을 제안한다. 인스파이어 리조트 중심에는 천장과 벽면, 기둥 전체를 초고화질 발광다이오드(LED)로 둘러싼 몰입형 디지털 거리 ‘오로라’가 조성되어 있는데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데다 큰돈 들이지 않고도 다양한 볼거리를 즐길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 타워·몰’은 다양한 팝업스토어와 체험 행사로 몰캉스족들의 방문이 끊이질 않는다. 롯데백화점 제공

서울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 타워·몰’은 다양한 팝업스토어와 체험 행사로 몰캉스족들의 방문이 끊이질 않는다. 롯데백화점 제공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대신 대형 쇼핑몰에서 휴가를 보내는 도심 체류가 증가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관광데이터랩 ‘관광지 검색 순위’에 따르면 검색량 상위 100개 키워드 중 1위부터 6위까지가 모두 쇼핑몰과 백화점이었다. 전체 검색어 중 백화점 31곳, 쇼핑몰 29곳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으며, 자연경관과 시장은 각 6곳에 그쳤다. 역사 유적지나 종교 성지는 2건에 불과했다. 최근 한 경제지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약 22.4%가 “특별한 계획 없이 집에서 보내겠다”며 여름휴가 계획으로 ‘집콕’을 선택했다. 장거리 이동에 대한 피로, 무더위 회피 심리, 혼자만의 시간을 중시하는 흐름이 반영된 결과다.

이러한 변화가 나타난 주요 배경으로 올해 유난히 긴 연휴가 많아 휴가 수요가 분산된 점을 꼽을 수 있다. 5월과 10월에 연차를 활용하면 장기 여행이 가능한 ‘황금연휴’가 포진해 있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은 장거리 여행을 다녀왔거나 혹은 계획 중이다. 자연스럽게 여름휴가는 ‘메인 이벤트’가 아닌 짧은 호흡으로 즐기는 ‘서브 휴가’로 재편된다.

경기 불황의 영향도 크다. 이는 휴가 지출 계획에도 반영되고 있다. PMI 조사에 따르면 올해 1인당 휴가 예산은 ‘30만 원 안팎’이 가장 많았고 20만 원, 50만 원대도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으로 사람들이 여행 지출을 줄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휴가 트렌드의 변화는 소비 패턴까지 바꾸고 있다. 집이나 근처에서의 휴가가 늘면서 캠핑 가전, 집 꾸미기 소품 등 일상 공간을 새롭게 만드는 소비가 자연스럽게 늘고 있다. 올해 1분기(1∼3월) 배달앱 거래액은 7조8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8.5%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람들은 멀리 떠나는 휴가를 포기하는 대신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재구성하고 공간을 재편하며 비용을 최적화하고 있다. 이제 기업의 초점도 바뀌어야 한다. ‘어디로 떠날 것인가’를 묻는 대신 ‘어떻게 머물고 싶은가’에 대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 집이나 가까운 곳에서의 휴식을 더 의미 있게 만들어 줄 아이디어, 개인의 취향에 맞춘 섬세한 경험 설계 속에서 불황을 넘어서는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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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영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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