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경쟁의 무게중심은 모델에서 인프라로 이동 중
AI 경쟁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한때 초점은 더 좋은 알고리즘과 더 많은 데이터에 있었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멀티모달ㆍ에이전틱ㆍ피지컬 AI로 확장되면서, 경쟁의 전선이 “누가 더 큰 연산자원을 안정적이고 저렴하게 확보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모델과 인재가 있어도 학습과 추론을 감당할 AI 반도체와 전력, 고속 네트워크, 냉각설비가 부족하면 AI 서비스는 실험실을 벗어나기 어렵다.
시장의 숫자도 이를 보여주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Grand View Research(그랜드 뷰 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AI 데이터센터 시장은 2024년 약 136억달러에서 2030년 약 605억달러로 성장해 연평균 28.3%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McKinsey(맥킨지)는 한발 더 나아가, 2030년까지 전 세계가 컴퓨팅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데이터센터에 약 6조7000억달러를 투입해야 하며, 그중 약 5조2000억 달러가 AI 처리용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것으로 분석했다. 새로 늘어나는 데이터센터 용량 수요의 약 70%가 AI 워크로드에서 나오고, 글로벌 데이터센터 용량 수요는 2030년까지 약 3배로 늘어 약 220GW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더 주목할 점은 수요의 무게중심이 한 번 학습하고 끝나는 ‘훈련’에서, 서비스가 작동하는 내내 연산을 소모하는 ‘추론’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Deloitte(딜로이트)는 AI 모델을 실제로 구동하는 추론 워크로드가 2025년 전체 컴퓨팅 수요의 절반에서 2026년에는 약 3분의 2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AI 데이터센터가 일회성 투자 대상이 아니라, 서비스가 제공되는 동안 계속 운영되어야 하는 상시 생산설비라는 의미다.
AI 데이터센터는 AI 시대의 공장이고 항만이며 고속도로
AI 데이터센터는 기존 데이터센터와 성격이 다르다. 일반 데이터센터가 저장과 접속의 인프라였다면, AI 데이터센터는 모델을 학습시키고 서비스를 실시간으로 구동하며 산업 전반의 자동화를 떠받치는 생산설비에 가깝다. 전통적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 규모가 대체로 10~25MW 수준으로 설명되어 왔다면, 하이퍼스케일 AI 데이터센터는 100MW를 넘는 전력 수요를 전제로 한다.
특히 AI 학습과 추론을 위한 고밀도 서버가 확산되면서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전산시설을 넘어, 24시간 안정적인 대규모 전력 공급을 필요로 하는 산업 인프라로 바뀌고 있다. AI 검색, 업무 자동화, 금융ㆍ의료ㆍ제조 AI, 로봇, 자율주행, 국방 AI까지 모두 이 기반 위에서 작동한다. AI 데이터센터는 AI 시대의 공장이고 항만이며 고속도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I 데이터센터는 AI 산업의 원가ㆍ속도ㆍ품질ㆍ보안ㆍ주권을 동시에 결정하는 전략자산이 되었고, 이는 기업 경쟁력을 넘어 국가 안보와 산업 주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특별법의 제정
이런 점에서 2026. 6. 9. 공포된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산업 진흥에 관한 특별법」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제22대 국회에서 발의된 여야 6개 법안을 병합한 이 법은, AI 데이터센터를 단순한 민간 설비가 아니라 인공지능산업 발전의 기반이 되는 핵심 인프라로 규정하고, 구축과 운영을 지원하기 위한 별도의 법체계를 마련했다. 핵심은 “데이터센터를 더 쉽게 짓게 해준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전력ㆍ용수ㆍ부지ㆍ도로ㆍ통신망ㆍ인허가, 그리고 전력 직접거래와 특구 지정까지, AI 인프라 구축의 병목을 하나의 산업정책 틀 안에서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이 본질이다.
실제 현장에서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기술만이 아니다. 전력 확보, 계통 접속, 냉각, 입지, 주민 수용성, 인허가 기간이 사업을 좌우한다. 특별법이 인허가 일괄처리와 이른바 타임아웃제, 비수도권 전력계통영향평가 면제 특례, 직접 전력거래(PPA, Power Purchase Agreement) 특례, 시설물 설치기준 완화를 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입법 과정에서 액화천연가스(LNG)를 포함한 직접 전력거래 허용 방안은 빠지고 재생에너지 기반 PPA만 일부 반영된 점은 안정적 대규모 전력 공급이라는 과제를 남긴다. AI 인프라 경쟁은 속도의 경쟁이지만, 그 속도는 행정절차와 전력망이 따라오지 못하면 실현될 수 없다. 국내 AI 기업과 연구기관이 해외 클라우드ㆍGPU 공급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으려면, 국내에서 예측 가능한 가격과 조건으로 대규모 컴퓨팅에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
신속한 구축과 신뢰 가능한 운영의 균형
AI 데이터센터를 국가전략 인프라로 육성한다는 것이 무조건적인 규제완화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정책적으로는 세 가지 균형이 필요하다. 첫째, 전력 확보와 탄소중립의 균형이다. 재생에너지 직접 전력거래 특례가 실제 장기 전력 확보와 온실가스 감축으로 이어지도록 정교한 기준이 설계되어야 한다. 둘째,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역 수용성의 균형이다. 비수도권 특례와 특구 제도는 분산의 기회이지만, 지자체와 주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편익 구조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셋째, 대기업 중심의 인프라 확충과 중소ㆍ스타트업ㆍ연구기관 접근성의 균형이다. AI 데이터센터가 일부 기업의 독점적 자산에 머문다면 국가 AI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공공 연구, 스타트업, 지역 기업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개방형ㆍ공유형 컴퓨팅 접근 체계가 병행되어야 한다.
산업화 시대의 전력망과 도로가 제조업의 기반이었다면, AI 시대에는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가 산업 전환의 기반이 된다. 특별법이 AI 산업에 관한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진흥을 위한 책무를 부여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력ㆍ입지ㆍ인허가를 단순한 규제 이슈로만 보는 시각이 아니라, 국가 AI 경쟁력과 에너지 전환, 지역 균형발전, 디지털 주권을 함께 설계하는 전략적 접근이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특별법의 제정은 출발점일 뿐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조속한 하위 법령의 제정과 이를 기반으로 한 정책 집행을 통해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를 신속하면서도 신뢰할 수 있게, 민간의 투자를 이끌되 공공적 기반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일이다.
[지평 테크레이더]에서는 AI, 데이터, 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라 급변하는 법·제도 환경을 기업ㆍ기관 실무자가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전달하고자 합니다. 송도영 변호사는 지평 IPㆍIT 그룹 소속으로, 인공지능데이터센터 지원을 위한 ‘AI-Infra 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AI 데이터센터, 개인정보, 정보보안, 규제샌드박스 등에 관한 자문 및 입법컨설팅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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