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난민 거부" 트럼프 정부, 남아공 백인 49명 '난민'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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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5.12 09:05 수정2025.05.12 09:05

백인 남아프리카인들이 프리토리아에 있는 미국 대사관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AP

백인 남아프리카인들이 프리토리아에 있는 미국 대사관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AP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들에게는 정착을 허용해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날 아프리카너스(Afrikaners·17세기 남아공에 이주한 네덜란드 정착민 후손) 49명을 태운 미국 정부 지원 전세기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OR탐보 국제공항을 출발했다.

남아공에서 과거 백인 정권은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 차별 정책)를 자행했지만, 그 후손인 이들은 현재 백인에 대한 역차별로 일자리를 잃고 폭력에 노출되는 등 박해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동조했다. 취임 직후인 지난 2월 7일 남아공 정부의 토지 수용 정책을 '인종차별적 토지 몰수'로 규정하고 남아공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아프리카너스 피해자의 입국과 정착을 도우라고 국무부와 국토안보부 장관에 지시했다.

당시 아프리카너스의 현지 이익단체 아프리포럼은 바로 이튿날 기자회견을 열고 부당한 인종차별 피해를 본 아프리카너스를 난민으로 수용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에 사의를 표하면서도 이를 에둘러 거절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삼는 토지수용법은 백인의 토지를 일방적으로 빼앗는 게 아니라 공익 목적의 무상 수용이더라도 투기 목적으로 보유하거나 버려진 토지 등 특정한 조건을 충족하고 소유주와 합의해야 가능하다는 게 남아공 정부의 입장이다.

남아공 측은 지난 9일 성명을 통해 "남아공 국민을 '난민'으로 가장해 미국에 정착시키는 것은 남아공의 헌법상 민주주의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한 정치적 동기가 있는 조처로 유감"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난민 수용은 미 정부가 대부분의 난민 재장착 프로그램을 중단한 상황에서 "매우 이례적인 조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 국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검토 지시에 따라 모든 난민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대부분,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부터 미국으로 난민 입국이 중단된 가운데, 트럼는 인종 차별을 당한다고 주장하는 남아공 백인들을 우선 처리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린 것.

인권 단체 등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난민들에게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수단이나 콩고민주공화국 등 전쟁과 굶주림을 피하려는 이들에게 굳게 걸어 잠근 문을 남아공의 백인에만 개방하는 것은 취약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난민 정책 자체를 조롱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의식한 듯 아프리카너들의 출국은 조용히 이뤄졌다는 평이다. 이들은 미국 대사관이 언론 접촉을 금지했다는 이유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고, 현지 경찰은 그들을 자극하지 말라며 취재진을 제지했다고 NYT는 전했다.

이번 난민 수용으로 미국과 남아공의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남아공은 트럼프의 측근인 일론 머스크가 태어난 곳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남아공의 다양한 국내·국제 정책을 문제 삼으며 원조를 중단하고 적대적인 정책을 폈다.

남아공이 이스라엘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한 것을 두고 "반미 국가"라고 규정했고, 국가가 개인의 토지를 무상으로 수용하는 법을 도입한 것이 '인종차별적 토지 몰수'라고 비난했다.

남아공은 현재 주요 20개국(G20) 회의 순회 의장국인데,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 3월 다양성, 포용성, 기후변화를 의제로 열린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G20 외무장관 회의를 보이콧했다. 또한 지난 3월 미국 주재 남아공 대사가 트럼프 발언이 백인우월주의를 조장한다는 의미로 발언했다며 추방했다. 이후 미국은 남아공이 의장국으로 있는 동안 G20과의 모든 협력을 중단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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