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의 ‘커플메이커’ ‘정착 요정’…여성 귀농인 서선아 리더십 [그 마을엔 청년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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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멸에 맞서는 청년들의 이야기-19회
무주 ‘산타지’ 서선아 대표

지난달 20일 전북 무주 덕유산 인근 산에는 온통 하얀 밤꽃이 한창이었다. 무주IC에서 내려 옛 신라 영토로 들어가는 ‘나제통문’을 지나자, 덕유산국립공원이나 구천동계곡을 드나들 땐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무주의 모습이 펼쳐졌다. 완만한 산과 알프스를 연상시키는 들판, 어머니 치마폭처럼 펼쳐 내린 대덕산 발치에 아스팔트 도로마저 끊긴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무풍면 지성리 율평마을이다.

농촌에 청년이 없고 특히 성인 남성들이 아내를 구하기 어려운 게 세태지만 이곳은 예외였다.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육묘장과 과수원, 김치공장 등을 운영하는 서선아 씨(40)와 그의 남편 김동영 씨(39)가 정착해 농업회사법인 파머스FNS를 차려 운영한 이후 친구와 친지 등 모두 여섯 쌍의 청년 부부 또는 예비부부가 농부로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고 있다.

무주 ‘산타지’ 마을 식구들이 밭일을 하다 포즈를 취했다. 모두 여섯 커플이 참여하고 있다. 산타지 마을 제공.

무주 ‘산타지’ 마을 식구들이 밭일을 하다 포즈를 취했다. 모두 여섯 커플이 참여하고 있다. 산타지 마을 제공.

서 씨는 “옛 백제 쪽 무주에 비해 신라 쪽은 풍광도 언어도 사는 동물도 다르다”며 “‘오지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반갑게 맞이했다. 이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친 그는 경북 김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어 부산과 전주의 대학에서 경영학 학부를 마친 뒤 수도권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하지만 가끔 상식이 통하지 않고 짜인 틀에 스스로를 꿰어 맞춰야 하는 도시 생활에 “이렇게 사는 것은 나답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귀향을 결정했다고 한다.전주의 대학에서 수업을 같이 듣다 만난 남편 김 씨와 2014년 결혼한 뒤 먼저 장인의 사업을 돕게 하고 자신도 2017년 합류했다. 2020년 법인을 설립하고 2022년부터 전북도의 도움을 받아 귀농을 원하는 청년들의 정착을 돕고 지역 아동들과 주민을 돌보는 농촌돌봄농장과 ‘무작정 농부’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후 지금까지 학교 후배인 최혜진 씨 부부, 남동생 부부, 사촌 동생과 독일 인 여자친구 커플, 서울에서 내려와 애플망고 농사를 짓는 청년커플, 무주 청년이 ‘도시와 농촌 청년의 삼락캠프’ 프로그램을 통해 배필을 만난 신혼부부, 부산에서 7일을 살고 무주에서 7일을 사는 ‘7도7촌’을 실천중인 예비부부 등 모두 여섯 쌍이 한솥밥을 먹게 된 것이다.

서선아 대표(오늘쪽 일어선 사람)이 무주 ‘산타지’ 식구들에게 작업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산타지 마을 제공.

서선아 대표(오늘쪽 일어선 사람)이 무주 ‘산타지’ 식구들에게 작업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산타지 마을 제공.

2025년 서 씨 부부의 파머스FNS는 중앙정부의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지원 프로그램에 도전 4수 끝에 합격했다. 스스로 정착한 여섯 쌍의 커플이 중심이 되어 무풍면과 대덕산 일대를 전국 청년들이 모여 백패킹과 농촌생활을 즐기고 정착을 모색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인근 폐교(구 증산국민학교)를 청년들의 활동 공간으로 활용하고 직접 마련한 대덕산 기슭 산지에서는 혼자만의 숲속 자연인 체험을 할 수 있는 백패킹장을 만들 예정이다.

1남 2녀 중 맏이로 태어난 서 씨는 어려서부터 ‘주체적인’ 아이였다. 글을 잘 쓰고 말하기를 좋아해 학교에서 1등과 반장을 놓치지 않았다. ‘여럿이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내는’ 스타일로 초등학생 때 마을에 굴러다니는 빈 병을 모아 대덕산에 아지트를 만드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남에게 끌려가거나 지루한 것을 못 참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도시 생활이 맞지 않았나 싶구요. 고향에 와서도 힘은 들었지만, 청년들이 떠나고 왜소해지는 고향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안타까움에 힘을 냈어요.”

서선아 대표(오른쪽)과 후배 최혜진 씨. 무주=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서선아 대표(오른쪽)과 후배 최혜진 씨. 무주=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그냥 농사로는 안 돼. 그럼 뭘 해야 할까.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뭔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던 대로 하기보다 새로운 일을 찾고, 혼자 하기보다 여럿이 할 친구를 구하고, 남이 해주길 바라기보다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이끄는 서 씨의 율평마을이 ‘산타지’라는 이름의 청년마을로 거듭나게 된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6학년과 3학년, 1학년인 세 아이를 둔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아이들도 무주의 자연에서 자기 주도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석호 동아닷컴 전무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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