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 전날 ‘오징어 게임’ 시즌3가 공개됩니다. 바로 귀에 익진 않으시겠지만 시즌3의 주요곡들도 공연장에서 들려드릴 겁니다.”
작곡가 겸 음악감독인 김성수는 지난 29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호텔인 에이든 바이 베스트웨스턴 청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성수는 인디 밴드의 편곡뿐 아니라 가무극, 창극, 뮤지컬 등에서 음악감독으로 활약한 작곡계의 팔방미인이다. 넷플릭스 시리즈인 ‘오징어 게임’에선 시즌1부터 시즌3까지 작곡을 도맡았다. ‘피지컬: 100’에 이어 ‘피지컬: 아시아’의 음악감독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오는 6월 28·29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자신의 음악을 집대성한 단독 콘서트인 <23 라이브(LIVE)>를 연다.
시인 이상에게서 영감 받은 곡으로 ‘믿음’ 다룬다
숫자 ‘23’은 김성수의 음악 인생 23년간을 상징한다. 그는 2002년 뮤지컬 ‘포비든 플래닛’의 음악감독으로서 공연음악과 처음 연을 맺었다. 당시엔 “엉망이었다”고 할 정도로 미숙한 점이 많아 그 후 약 8년간 뮤지컬 작업은 손을 놨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성수는 “23년의 음악생활은 고정관념과 싸우는 연속이었다”며 “조감독을 해본 적이 없어 소위 말하는 사수라고 할 게 없다보니 (저를 둘러싼) 고정관념이 좋든 나쁘든 계속 있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어느 정도 스스로에게도 고정관념이 베어 있는 것 같다”며 “이번 콘서트로 제가 하고 싶었던 것,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그는 콘서트를 전체 흐름이 이어지는 4개 장으로 짰다. 첫 장은 ‘엔트로피’, 두 번째 장은 ‘공명(共鳴)’, 세 번째 장은 ‘대칭’, 마지막 장은 ‘정적(靜寂)’이 주제다. 엔트로피는 열역학 제2법칙의 근간으로 모든 에너지가 무질서한 형태로 수렴하는 현상을 뜻한다. 김성수는 오징어 게임에서 분홍 제복을 입은 병사들이 나타날 때 쓰였던 곡인 ‘핑크 솔져스’를 재해석해 현대 사회의 무질서함을 드러내기로 했다. 그는 “핑크 솔져스는 무질서를 표현하고자 어떤 작품의 전환 음악으로 만들었던 곡인데 (처음엔)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았다”며 “(오징어 게임의) 정재일 음악감독이 이 곡을 듣고 ‘이런 보물을 어디에 숨겨놓으셨어요’라고 말하더니 병사들의 테마 곡으로 썼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장 ‘공명’에선 종교음악 색을 더한 전자음악을 들려준다. 김성수는 다음 달 발매할 앨범의 수록곡들로 찬송가 분위기를 만들었다. 김성수는 “첫 장에서 혼란을 다뤘다면 두 번째 장에선 공명으로 믿음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며 “세상엔 지나치게 확신을 가져서 생기는 문제가 많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희망적인 의미의 믿음만이 아니라 다양한 믿음들이 불러오는 파급 효과를 관객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김성수는 ‘오감도 시 제14호’처럼 시인 이상의 시에서 영감을 받은 노래들을 현악과 합창을 곁들어 선보이기로 했다. 이날 간담회에선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에서 선보인 곡인 ‘까마귀’를 싱어송라이터 김푸름의 노래로 들려줬다. 김성수가 전자음악 장비인 모듈러 신스를 다루며 피아니스트, 첼리스트와 협연하는 삼중주를 선보이도 했다.
마음에 안식은 ‘오징어 게임’ 메들리로
콘서트 후반부인 세 번째 장 ‘대칭’은 사회 구성원 서로가 마주 보는 단계다. 김성수는 그간 선보인 뮤지컬 음악들을 모아 이번 장을 짰다. 그는 <보이스 오브 햄릿>,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광화문 연가>, <썸씽로튼>, <베르나르다 알바> 등의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최재림, 김동완 등 여러 뮤지컬 배우와 협업해 왔다. 김성수는 “(협업했던) 배우들을 공연 양일에 불러 함께하는 무대를 만들 것”이라며 “뮤지컬에 국한하지 않고, 프로듀서를 맡았던 검정치마의 곡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들려드리겠다”고 말했다. 다만 공연에 참가할 뮤지컬 배우가 누구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마지막 장은 온갖 소란이 사라지는 ‘정적’의 시간이다. 공연 자체는 정적이지 않겠지만 국악과 무용을 활용해 마음만큼은 고요해지는 음악을 선보이겠다는 게 김성수의 목표다. ‘피지컬: 100’과 ‘오징어 게임’을 위해 만들었던 곡들로 메들리도 선보인다. 공연 직전인 6월 27일엔 오징어게임 시즌3가 넷플릭스에 공개되기도 한다. 김성수는 “시즌3를 포함한 여러 곡들을 메들리로 모았다”며 “디즈니플러스의 출시 행사에서 편곡해 선보였던 마블 시리즈의 음악도 연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도 밤샘 작업을 하면서 ‘피지컬: 아시아’의 1화 음악을 끝냈다”던 그는 “‘어떻게 하면 전세계의 헬스장에서 울려퍼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작곡했다”고 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 색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김성수는 “(의뢰자가) 주는 레퍼런스가 확실하면 창작자로선 세계적인 작품을 못 만든다”며 “‘어떤 작품에서 본 것처럼 해주세요’라고 요구하면 우리(작곡가)가 갖고 있는 더 색다른 음악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독창성)야말로 제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입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더 좋은 걸 갖고 있어요. ‘외국에서 하듯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88 서울 올림픽 때 가졌을 법한 생각 같아요. (따라하기보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