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왕은 없다" 분노…실리콘밸리 뒤덮은 反트럼프 행렬 [현장+]

11 hours ago 2

입력2025.06.15 11:20 수정2025.06.15 11:20

1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권위주의 행보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가 열리고 있다./ 송영찬 특파원

1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권위주의 행보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가 열리고 있다./ 송영찬 특파원

“지금 미국은 1930년대 독일과 같습니다. 민주주의는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습니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를 관통하는 길인 ‘엘카미노레알’에서 만난 쇼반 브레난(28) 씨는 “미국은 이민자 국가인데 정부가 나서 이민자들을 내쫓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엘카미노레알에는 서쪽 팰로알토시부터 서니베일시에 이르는 7마일(약 11㎞)의 구간에 1만5000명(주최측 추산)의 사람이 기다란 ‘인간 사슬’을 만들었다. 시위는 ‘왕은 없다(No Kings)’는 이름으로 기획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규탄하는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의 일환이었다.

이날 시위는 미국 전역 2000여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으로 꼽히는 캘리포니아주는 물론 뉴욕, 시카고, 휴스턴, 필라델피아, 애틀란타 등 주요 도시 곳곳에서 열렸다. ‘50501 운동(50개 주, 50개 시위, 하나의 목소리)’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된 이번 시위는 트럼프 대통령의 79번째 생일이자 미국 육군 창설 25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열리는 날에 맞춰 진행됐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권위주의 행보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가 열리고 있다./ 송영찬 특파원

1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권위주의 행보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가 열리고 있다./ 송영찬 특파원

지난 대선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전 두 번의 대선 때보다 더 많은 표를 몰아준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시위 참가 인원은 당초 예상의 두 배를 뛰어넘었다. 당초 주최 측은 ‘7x7K(7마일 거리를 7000명이 함께)’라는 이름으로 시위를 계획했지만 이날 두 시간 가량 진행된 집회에는 1만5000명이 넘는 사람이 참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현장에서 만난 마리아 로드리게스(41) 씨는 “처음엔 집회에 나올 생각이 없었지만 트럼프가 LA에 군을 투입해서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모습을 보고 나오게 됐다”며 “이게 2025년 세계 제1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맞냐”며 반문했다.

집회 현장은 최근 LA 집회 때와 달리 평화적이었다. 도로를 지나는 차량들은 하나같이 시위를 지지한다는 의미로 경적을 울렸고, 시위대는 환호를 지르며 화답했다. 시위 현장 인근의 마트를 찾았다가 장을 보기 전 시위에 합류하는 가족들도 눈에 띄었다. 현장에서 만난 데이브 워커 씨는 “나도 젊었을 때 영국에서 이민 온 이민자 출신”이라며 “우리 경제의 건실한 노동계급인 이민자들을 마구잡이로 쫓아내는 현실에 개탄해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부인 딜로 워커 씨는 “민주주의를 빼앗겼다”며 “캘리포니아는 트럼프의 땅이 아니다”고 말했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에서 만난 딜로 워커 씨(왼쪽)와 데이브 워커 씨가 손수 준비해온 팻말을 들고 서 있다./ 송영찬 특파원

1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에서 만난 딜로 워커 씨(왼쪽)와 데이브 워커 씨가 손수 준비해온 팻말을 들고 서 있다./ 송영찬 특파원

정권 초기 트럼프의 핵심 참모로 꼽힌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분노도 이어졌다. 이날 집회 구간도 팰로알토의 테슬라 쇼룸에서 서니베일의 테슬라 쇼룸 사이로 정해졌다. 시위대의 팻말 중에는 “일론은 거짓말쟁이”, “노(No) 트럼프, 노 일론, 노 파시즘” 처럼 트럼프와 함께 머스크를 비판하는 팻말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일부 시위대는 테슬라 차량이 지나가면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권위주의 행보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가 열리고 있다./ 송영찬 특파원

1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권위주의 행보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가 열리고 있다./ 송영찬 특파원

민주당의 반(反)테크 기조와 과도한 PC(정치적 올바름)주의에 염증을 느껴 트럼프에 우호적으로 바뀌었던 실리콘밸리의 민심이 다시 돌아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대선 당시 실리콘밸리 지역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산타클라라 카운티에서의 트럼프 대통령 득표율은 30%로 2016년(20%), 2020년(23%)과 비교해 크게 올랐다. 이는 통상 비슷한 정치적 성향을 띠던 샌프란시스코(15.5%)와 비교해 두 배 가까운 득표율이었다. 현지 테크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반LGBT 정책 기조보다 테크업체 종사자들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건 관세 정책이었다”며 “트럼프를 찍은 많은 사람들은 친기술적인 정책을 기대했지만 돌아온 건 아직 없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송영찬 특파원 0full@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