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일본의 실패를 굳이 따라 하겠다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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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태어난 아이 직장 다닐 2050년이면
인구 40% 연금 생활-80세 이상 750만 명
日, 복지 비용 늘어 빚내서 빚 갚는 구조
경제 뇌관 되자 한발 늦은 복지개혁 후회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아버지가 한 달간 중환자실에 있었던 적이 있다. 당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릴 때라 면회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새벽 몇 시라도 좋으니 환자가 검사실로 이동할 때 복도에서라도 볼 수 있게 꼭 연락해 달라고 병원 측에 신신당부했다. 제발 한 번만이라도 눈을 뜨고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기를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아버지는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퇴원 절차를 밟으면서 생각보다 중환자실 비용이 적게 나와 놀랐다. 아버지는 파킨슨병 환자였고 그래서 건강보험 산정특례 대상이었다.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걸 새삼 실감했고 감사했다.

고령의 부모가 위중해지면 자녀들은 슬픔뿐만 아니라 죄책감으로도 고통을 받는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병원과 의료진이 최선을 다해 줬다는 생각이 들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나는 아버지가 계신 요양병원에 생명을 연장하는 조치는 취할 필요 없지만 고통을 감하는 조치는 다 해달라 부탁했다. 한국의 의료복지 제도 덕분에 할 수 있는 부탁이었다.

나라의 재정 상태를 알기에 노인을 위한 복지를 더 늘려 달라고는 말하지 못한다. 다만 내가 받은 혜택을 남들도 누리기를 바란다. 그러나 내가 받은 혜택을 남들도 누릴 수 있도록 지금 제도를 유지하는 게 실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2025년 한국의 80세 이상 노인 인구는 25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2040년에는 500만 명이, 2050년에는 750만 명이 넘을 것이다. 지금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80세 이상 노인에게 드는 복지 비용이 15년 뒤에는 두 배, 25년 뒤에는 세 배 더 필요하다는 말이다.

지금 제도에서는 65세부터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정년 연장도 65세를 목표로 한다.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이제 막 진입했다. 2040년에는 그 비중이 35%로, 2050년에는 40%로 늘어날 것이다. 2050년이면 올해 태어난 아이가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할 때다. 그 아이는 인구의 40%가 국민연금으로 생활하고 80세 이상 노인이 750만 명인 나라에서 연금과 건강보험료를 내기 시작해야 한다. 그 아이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 지워질지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무겁다.

올해 일본의 정부 예산은 115조 엔(약 1166조 원)이다. 그중 24.5%가 국채비로 쓰인다. 국채에 약정된 이자를 내고 만기가 된 국채를 상환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올해 상환하는 국채는 17조7000억 엔 정도일 것으로 전망된다. 조세 수입만으로는 예산을 충당할 수 없어서 예산의 24.9%인 28조6000억 엔은 다시 국채를 발행해서 마련해야 한다. 새 빚을 내서 지금 빚을 갚는 구조지만 새로 내는 빚은 28조6000억 엔인데, 갚는 빚은 17조7000억 엔이니 빚이 줄지 않는다.

버블이 붕괴된 1990년부터 작년까지 일본 정부의 보통국채 잔액은 934조 엔 증가했다. 일본 정부 계산에 따르면 그중 50%는 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 관련 비용의 증가 때문에 발생했다. 일본 국민도 자국 정부의 취약한 재정 상태에 대해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최근 선거를 앞둔 일본 여당이 관세 전쟁을 핑계로 전 국민에게 1인당 5만 엔을 지급하는 안을 검토하다가 철회한 일이 있다. 나랏빚에 지친 국민의 반대 여론이 거셌기 때문이다. 일본은 예산의 24.5%를 국채비로 쓰는 지경이 되고서야 국민이 똑똑해졌다. 과도한 정부 부채는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는 뇌관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니 늘 관리해야 하는 협심증과도 같다. 일본은 이미 2005년에 연금 개혁을 했고 건강보험도 수차례 개정했지만, 그래도 더 빨리 고쳤어야 했다는 후회를 한다.

한국은 협심증 초기 증상을 보인다. 아직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다. 하지만 중증이 된 옆집 환자를 보면 이게 얼마나 위험한 병인지, 초기에 관리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지 않나. 하지만 “이거 위험한데” 하면서도, 말만 그렇지 행동은 굳이 중증이 된 옆집 환자가 후회하는 일을 그대로 따라 하려 한다. 대선이 다가오니 여러 주자가 나라를 위해 돈을 얼마를 쓰겠다고 돈 쓰는 경쟁을 한다. 그 돈을 어디서 조달할 수 있는지는 얘기가 없다. 일본이 후회하는 일을 굳이 따라 하겠다는 사람들.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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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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