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묻으면 ‘뭉칫돈’, NPL·리츠는 ‘희비’…옥석 가리기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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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린 크레디트, 극과 극]④
반도체·AI 밸류체인 공유하면 건설·석화채도 거뜬
같은 A+급이어도 기초자산 성격 따라 희비 엇갈려
“불확실성 커진 만큼 눈높이도 깐깐…현미경 검증”

  • 등록 2026-03-30 오전 11:23:02

    수정 2026-03-30 오전 11:23:02

[이데일리 마켓in 이건엄 기자]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와 고금리 장기화 우려로 크레디트 시장 투자 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투자자들의 극단적인 '옥석 가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업황 둔화에 시달리는 석유화학과 건설 업종이라도 '반도체 밸류체인'에 속한 기업은 우호적인 금리를 받으며 무난한 조달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동일한 우량 신용등급(A+)을 갖췄더라도 기초 자산의 성격과 전방 산업에 따라 조달 금리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등 투자자들의 잣대가 한층 깐깐해졌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석유화학 업황 부진 속에서도 한솔케미칼(A+)은 최근 700억원 규모의 3년물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모집액의 10배에 가까운 670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았다. 금리 조건 역시 우수했다. 750억원 기준으로는 마이너스(-) 17bp, 최대 1400억원 증액 발행 시에도 -14bp로 결정되며 성공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여타 석유화학 업체들이 기준금리 대비 높은 오버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며 고전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솔케미칼의 이례적인 흥행 비결은 단연 '반도체'다. 매출의 40% 이상을 고부가가치 제품인 과산화수소 부문에서 창출하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대만 TSMC 등 글로벌 핵심 반도체 기업들을 탄탄한 고객사로 두고 있어 업황 부진의 파고를 넘었다는 평가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로 건설채 기피 현상이 팽배한 가운데 SK에코플랜트(A-)도 예상을 깬 깜짝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1500억원 모집에 무려 1조210억원의 막대한 자금을 끌어모았다. 1.5년물은 -53bp, 2년물은 -36bp, 1년물은 -30bp 등 전 구간에서 압도적인 두 자릿수 언더 발행에 성공했다.

SK에코플랜트가 건설채의 무덤 속에서도 살아남은 결정적 요인으로는 'SK하이닉스 후광 효과'가 거론된다. 단순 건설사를 넘어 하이테크 자회사 편입,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인프라 확장 등 그룹 내 핵심 계열사인 SK하이닉스와의 사업 연계성을 대폭 강화해 전반적인 펀더멘털을 제고한 점이 투심을 강력하게 견인했다.

한 채권 운용역은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이 보다 면밀하게 투자 대상을 살피는 분위기"라며 "업황이 좋지 않더라도 반도체나 AI 등 미래 성장 산업과 밸류체인을 공유한 기업에는 적극적으로 투자하려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깐깐한 선별 투자 기조는 동일한 우량 신용등급 내에서도 극명한 조달 격차를 만들어내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 장기화라는 동일한 거시 환경 속에서 나란히 A+ 등급표를 단 부실채권(NPL) 투자사와 리츠(REITs)의 희비가 완벽하게 엇갈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부동산 부실화 심화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향후 높은 수익성이 기대되는 NPL인 대신에프앤아이는 2000억원 모집에 1조5320억원의 뭉칫돈이 몰렸다. 만기별로 -10bp~-45bp의 파격적인 언더 금리를 기록하며 최대 3000억원까지 증액을 검토 중이다.

반면 기초 자산 가치 훼손 우려의 직격탄을 맞은 삼성FN리츠는 2000억원 모집에 4000억원의 주문을 받아 미매각 사태는 면했으나, 2년물(+29bp)과 3년물(+24bp) 모두 두 자릿수 오버 금리를 감수해야만 했다. 목표 물량은 채웠지만 조달 비용 면에서는 뼈아픈 결과다.

다른 채권 운용역은 "아무리 A급 이상의 우량 신용도를 갖췄더라도 리츠처럼 기초 자산 가치 하락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섹터는 철저히 외면받는다"며 "반면 NPL처럼 불황형 수익 구조를 갖춘 곳에는 적극적으로 베팅하는 등 동일 등급 내에서의 옥석 가리기가 그 어느 때보다 심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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