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에 퇴사 충동, ‘저전력 모드’가 필요할 때[김지용의 마음처방]

3 days ago 10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진료실에서 출근 생각만 해도, 회사 건물만 눈에 들어와도 가슴이 답답해진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책임감에 맡은 일은 해내고 있지만 ‘차라리 사고가 나거나 질병에 걸렸으면…’ 하는 마음을 숨긴 채 살아가는 분들이 참 많다.

어찌 그런 생각을 하나 싶을 수 있겠지만 번아웃 상태에서는 흔하게 떠오르는 생각들이다. 국가데이터처에서 발간한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 10명 중 3명 이상이 번아웃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럴 때 자연히 퇴사를 첫 번째로 떠올릴 수 있다. 그 선택이 정답일 때도 많지만, 번아웃 상태에서의 결정은 한결 더 신중해야 한다.

흔히들 번아웃을 단순히 피곤하고 지쳐 의욕이 없는 상태 정도로 가볍게 여긴다. 하지만 최근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번아웃은 우리의 의사결정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틀어버린다.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되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고 장기적인 손익을 계산하는 뇌의 복내측 전전두엽 부위는 물리적으로 위축되고, 불안과 공포를 관장하는 편도체는 비대해진다.

이러한 뇌의 구조적 변화는 두 가지 극단적 양상으로 이어진다. 첫째는 정서적 고갈로 인한 조급함이다. 이 상태의 뇌는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보다 당장의 고통을 끝내는 선택을 찾게 된다. 그렇기에 퇴사와 대인관계 손절 같은 중대 결정을 성급히 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는 냉소주의다. ‘뭘 해도 어차피 안 될 것’이라는 무력감에 결정을 무기한 미루거나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둘 모두 건강한 판단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번아웃에 빠진 상태에서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어떤 선택지가 있을까? 우선 꼭 시도해야 하는 것은 ‘저전력 모드’로의 전환이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없을 때 화면이 어두워지며 최소화된 기능으로 버티듯, 우리의 뇌에도 그런 전환이 필요하다. 기억해야 할 점은 안타깝게도 완벽주의 성향이 있거나 내적 기준이 높은 사람이 번아웃에 더 잘 빠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기존의 방식으로 계속 버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더 유연한 태도를 장착할 필요가 있다.

물론 마냥 쉬운 선택은 아니다. 이 이야기를 담은 영상에도 저전력 모드로 전환했다간 회사에서 비난받는다, 그러니 당장 퇴사가 가장 맞는 길이라는 댓글들이 여럿 있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일단 저전력 모드로 전환해 보자. 그다음 회사와 동료들의 반응을 관찰하자. 나의 번아웃을 알렸음에도 비난만이 돌아온다면 떠나야 할 곳임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때 떠나도 늦지 않다. 하지만 번아웃을 알리니 내 걱정과 달리 기존 과중한 업무에 미안함을 표하고 회복을 지원하며 기다려 준다는 이야기도 자주 전해 듣는다.

그 어떤 직장과 그 어떤 업무보다 나의 건강이 우선이다. 그러니 떠나는 것이 답일 때도 있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번아웃이 반복된다면 한번 돌아보자. 그 번아웃은 지금껏 내가 너무 전력 질주했으니, 이제는 유연하게 속도 전환 모드를 갖춰야 함을 알려주는 신호다.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2017년 팟캐스트를 시작으로 2019년 1월부터 유튜브 채널 ‘정신과의사 뇌부자들’을 개설해 정신건강 정보를 소개하고 있다. 6월 기준 채널의 구독자 수는 약 32.3만 명이다. 에세이 ‘빈틈의 위로’의 저자이기도 하다.

※김 원장의 ‘번아웃으로 퇴사하고 싶을 때’ (https://youtu.be/rPhDlM3PY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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