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16일 '보수의 심장'으로 꼽히는 대구를 찾았다. 대구 지하철참사 추모를 시작으로 시민들과 접점을 늘리며 등 '배신자' 프레임 정면 돌파에 나섰다는 평가다.
한 전 대표는 이날 오후 2시30분께 대구 중앙로역에 위치한 기억공간을 방문했다. 이곳은 대구시민들의 집단적 트라우마인 '대구 지하철 참사' 흔적을 전시해둔 곳이다. 지난 2003년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으로 192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을 당한 참사다.
기억공간 벽면에는 '우리 지은아, 엄마가 너무 미안하다', '좋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 만나자' 등 희생자들을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빼곡하다. 한 전 대표는 희생자들 이름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추모벽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사랑하는 내 딸아'라는 제목의 희생자 유족이 쓴 편지도 고개 숙여 읽었다. 한 전 대표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고, 위험한 나라가 되는 것을 막겠다는 일념으로 나왔다"며 "제 각오를 다지고 추모의 뜻을 보이기 위해 중앙로역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대구 수성못 인근에서 30여명의 대구·경북 청년 기업인들과 경청회를 진행했다. 청년 기업인들은 수도권 쏠림으로 인한 판로 개척의 어려움, 미성년자 주류 제공업자 과잉 처벌, 청년 창업자 세액감면 확장 등에 대해 고충을 토로했다. 한 전 대표는 "미성년자 주류 문제로 인해 영업상 가해지는 불이익은 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실효적인 법 개정, 단속에서의 유연성을 기반으로 정책을 펴겠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 창업 세 감면은 최초 창업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넓혀나가는 방향으로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서울 잠실에서 대구로 내려온 청년 기업인의 경우 "서울 물가가 너무 비싸다 보니 대구 지역으로 오려는 수요도 있지만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한 전 대표는 "수도권 집중 문제를 풀기 위해선 균등하게 돈을 뿌리는 게 아니라 서울과 경쟁할 수 있는 몇 군데를 꼽아 집중적으로 규제를 풀어야 한다"며 "인공지능(AI) 개인정보보호법은 어떤 특정 지역에만 풀어주는 등 새로운 방식의 지역 성장을 도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시민이 "전직 대통령이 탄핵당했는데 검사 출신 대통령이 또 될 수 있겠냐"라는 질문을 던지자 한 전 대표는 "검사 조직의 줄 세우기 문화, 상명하복의 정 반대편에 있는 정치를 보여드렸다"며 "지난 총선 때 검사 공천하지 않았고, 국민이 원하는 정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한 대표의 유세 현장에서 일부 시민들이 "배신자"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한 전 대표는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대구가 보수에 주는 사랑과 지지는 공짜가 아니다. 보답하는 정치를 하겠다"며 "저를 내치셔도 대구에 대한 의리를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저녁 6시부터는 수성못을 돌며 시민들과 함께 걷는 '해피워크'를 진행했다. 한 전 대표는 자서전에 사인을 해주고 어린아이와 사진을 찍는 등 시민들과 접촉을 늘려갔다. 수성못을 걷는 동안 시민들은 "이겼다, 이겼다"라며 구호를 외쳤다. 해피워크 이후 한 전 대표는 인근 '대구 통닭'을 찾아 시민들과 함께 식사하며 일정을 마쳤다.
양현주 기자 hj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