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잃은 도박사이트 이용자에
'불법계좌 제보 사례금' 광고
계좌 받으면 피싱피해금 입금
지급정지 시킨뒤 합의금 유도
수억원 자금줄 묶인 도박업체
정기적 비용내는 제휴 맺기도
불법 도박사이트에서 돈을 잃은 30대 남성 A씨는 지난 4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게시된 광고를 보고 한 텔레그램 대화방에 접속했다. 도박사이트 불법 계좌를 제보하면 25만~100만원의 사례금을 지급한다는 문구 광고였다.
A씨 본인이 이용하던 도박사이트의 가상 계좌번호와 예금주명을 넘기자 며칠 뒤 사례금 명목으로 25만원이 입금됐다. 하지만 이후 A씨 통장은 갑자기 거래가 정지됐고, 도박사이트 실장이라는 사람에게서 '당신이 우리 계좌를 제보했느냐. 가만두지 않겠다'는 문자메시가 날아왔다. A씨는 "도박으로 잃은 돈을 조금이라도 되찾으려고 한 행위였는데 매일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3일 매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보이스피싱 등 범죄 피해를 막기 위해 도입된 '계좌 지급정지 제도'가 범죄조직이 다른 범죄조직을 협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행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르면 금융사는 보이스피싱 피해 신고가 접수되면 사기 범죄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계좌를 즉시 지급정지해야 한다. 지급정지란 출금이나 이체 거래를 동결시키는 조치로, 사기 피해금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최근 등장한 '통장협박' 조직은 이 제도를 범죄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표적으로 삼은 계좌에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소액 입금해 지급정지를 유도한 뒤 명의인에게 '통장을 정상화해주겠다'며 합의금을 요구하는 수법이다.
그동안 통장협박 범죄의 주요 표적은 자영업자나 인터넷방송인 등 계좌 정보가 알려진 이들이었지만 최근에는 범죄 대상이 불법 사이버도박 조직의 대포통장으로도 확대됐다. 도박 조직은 다수의 대포통장을 활용해 계좌별로 수천만 원 또는 수억 원 상당의 돈을 관리하는데 계좌가 묶이면 자금줄이 마비된다.
통장협박 조직은 불법 사이버도박 조직의 경우 수사기관 등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자금 출처가 불분명한 데다 계좌 자체도 타인 명의로 개설된 대포통장이라 보이스피싱과 무관하다고 소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장협박 조직은 사이버도박 조직의 대포통장을 반복적으로 타격한 뒤 '제휴'를 제안한다고 한다. 정기적으로 비용을 내면 해당 사이트와 관련된 계좌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일종의 불가침 조약이다.
이 같은 신종 통장협박 범죄에는 도박사이트 이용자들이 동원되고 있다. 통장협박 조직은 '불법 계좌를 제보하면 사례금을 지급한다' '도박으로 잃은 돈을 되찾아주겠다' 등 감언이설로 도박사이트 이용자를 꾀어낸다. 이 같은 꾐에 넘어간 이들은 통장협박 조직에 자신의 계좌와 함께 도박사이트 계좌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통장협박 조직이 어떻게 도박 조직 대포통장의 진짜 계좌번호를 알아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은 확실하지 않다. 도박 조직은 자신들의 계좌 정보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 돈을 입금받을 때도 가상계좌를 활용하고 있다. 이용자 요청에 따라 도박사이트 예치금을 이용자 계좌로 돌려줄 때도 송금인인 도박 조직 측 계좌번호는 개인정보로 보호된다.
통장협박 조직은 가상계좌의 모(母)계좌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물론 송금인 측 계좌번호까지 알아낸다고 한다. 모두 정상적인 경로로는 확보할 수 없는 정보다.
금융권 관계자는 "진짜 계좌번호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금융사 종사자들이 연루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금융사 내부 접근 권한이 악용됐는지 수사기관이 자금흐름과 조회 기록을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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