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기지에서 7구의 시체가 발견됐다...동토에 은폐된 진실

1 day ago 1

미드 혹은 세계의 여러 시즌제 드라마를 보는 데 있어서 그 경험의 축은 이 말 한마디가 결정한다. HBO의 <트루 디텍티브>를 봤느냐 안 봤느냐이다. 모든 시즌 드라마는 <트루 디텍티브> 시리즈 이전과 이후로 가르마를 탄다. 그 정도로 이 드라마의 사이코로지컬(심리적) 깊이와 철학적 도해, 형식과 내용의 풍부함, 배우들의 지독할 만큼 철저한 연기 등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로운 지점에 등극했다. 특히 시즌 1이 그랬다. 깡마르게 나온 매튜 맥커너히와 번질번질한 기름기가 흐를 만큼 살이 찐 우디 해럴슨의 천재적 연기는 혀를 내두르게 했다.

기본적인 포맷은 두 형사가 특정 사건을 두고 내사과로부터 취조받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둘은 수사의 모든 원칙과 도덕률을 깨고서라도, 그 테두리 안에서는 도저히 잡을 수 없는 연쇄살인범의 뒤를 쫓고 있는 중이다. 그 긴박한 서스펜스의 에피소드가 8부작 전체를 휘감고 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조셉 콘래드식 어둠의 심연을 우리 스스로 물끄러미, 유체 이탈 화법으로 응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어두운 욕망 얘기가 아니다. 어둠 그 자체에 대한 것이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어두운 욕망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둠 그 자체가 만든다. 인간은 곧 어둠이다. 그것이야말로 이 시즌제 드라마의 계속되는 주제이다.

HBO <트루 디텍티브> 시즌1. / 사진출처. IMDb

HBO <트루 디텍티브> 시즌1. / 사진출처. IMDb

시즌4는 ‘4’라는 이름 대신 부제를 달고 있다. <트루 디텍티브: 나이트 컨트리>다. 밤의 나라. 역시 밤과 어둠을 강조한다. 배경은 알래스카이다. 에니스라는 소도시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12월 17일부터 31일까지 극야(極夜: 해가 뜨지 않는 현상. 극지방에서 나타난다)의 시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에니스는 인간이 살기 어려운 추위의 공간이지만 두 가지가 있어서 도시가 유지된다. 하나는 광산이고 또 하나는 살(찰)랄 북극 연구기지이다. 이 연구소는 특히 수억만 년 전 고대 미생물의 DNA를 추출하는 실험을 거듭하는 중이다. 8명의 연구원 남자들이 지난 15년간을 고립돼 살아왔다.

사건은 이 8명이 갑자기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그중 7명이 혹독한 최저기온의 벌판에서, 그것도 모두 나신의 시체로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표정은 모두 무엇인가를 보고 공포와 경악에 떠는 모습들이다. 특히 실험실 바닥에는 누군가의 혓바닥이 보란 듯이 놓여 있다. 자, 이 연구원들은 무엇을 보았는가. 누군가의 핸드폰에 남아있는 영상에는 사라진 한 명 곧 레이먼드 클라크(오웬 맥도웰)가 “그녀가 돌아왔어. 그녀가 살아 있어”라며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담겨 있다. 레이먼드가 중얼대는 그녀란 과연 누구인가. 연구원들 일곱은 누가 죽였는가, 아니면 집단 자살인가. 그렇다면 레이먼드는 또 어디에 있는가. 그는 죽었는가 살았는가.

 나이트 컨트리>에서 레이먼드 클라크(오웬 맥도웰 분). / 사진. ⓒMichele K./HBO

<트루 디텍티브: 나이트 컨트리>에서 레이먼드 클라크(오웬 맥도웰 분). / 사진. ⓒMichele K./HBO

에니스 시의 경찰서장인 엘리자베스 댄버스(조디 포스터)는 상사인 코넬리(크리스토퍼 애글스톤)와 내연관계고 라이벌 관계이다. 코넬리는 댄버스에게 이 의문투성이의 사건을 본청이 있는 앵커리지로 옮기라 하지만 댄버스는 웬지 모를 감으로 자신이 이걸 해결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댄버스는 어린 아들을 사고로 잃은 적이 있고, 그 아픔과 통증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겉으로는 강하고 차가운 척 지내는 여자다. 댄버스는 현재 예전 남자의 딸인 리아(이자벨라 스타 라블랑)를 키우며 살아간다. 딸의 아빠가 살았는지 사라졌는지, 죽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사춘기에 접어든 딸 리아는 레즈비언이다. 게다가 광산개발을 반대하는 시위에 나가는 등 엄마가 보기에 점점 급진주의자가 되어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둘의 관계는 여느 모녀처럼 사이가 좋지 않다.

댄버스는 과거의 파트너이자 이누이크족 출신인 에반젤린 나바호(칼린 레이즈)가 애니라는 또 다른 이누이크족 여성(니비 페더슨)이 의문의 도구로 27번이나 찔려서 죽은 후 혀까지 잘린 채(연구소에서 발견된 그 혀) 시체로 발견된 사건에 매달려 사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둘은 이전에 같은 흉악범을 좇은 적이 있고 그 인간 말종은 결국 자기 여자를 참혹하게 살해한 후 자살한 것으로 사건이 종결됐지만, 웬일인지 두 사람은 이후 의도적으로 서로 다르게 살아왔다. 댄버스는 나바호를 경찰서 소속이 아니라 고속도로 순찰대 소속으로 발령을 낸다.

댄버스 서장은 북극 연구소 연구원 실종 및 동사 살해사건에 나바호와 같이 하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한명은 연구원들의 행적을, 한명은 살해된 여인 애니의 동선을 쫓으면서 결국 이 두 사건이 하나의 거대한 비극으로 연결돼 있음을 알게 된다. 댄버스와 나바호는 거악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지만, 범인을 꼭 잡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진실의 실체를 다 밝힌다는 것이 꼭 정의로운 일만도 아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때로는 사람을 살리기보다 죽이는 쪽으로 행사될 때가 많다. 두 여자 형사는 곧 그런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

에니스 시의 경찰서장인 엘리자베스 댄버스(조디 포스터 분)와 그녀의 과거 파트너 에반젤린 나바호(칼린 레이즈 분). / 사진. ⓒMichele K./HBO

에니스 시의 경찰서장인 엘리자베스 댄버스(조디 포스터 분)와 그녀의 과거 파트너 에반젤린 나바호(칼린 레이즈 분). / 사진. ⓒMichele K./HBO

알래스카의 추위 속에서 사는 이누이트족은 전통적으로 죽은 사람들을 보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하 수십도의 허허벌판에서 고립돼 살아가는 그들에게 죽음은 늘 가깝게 있는 것이며, 그 ‘죽음=죽은 사람’이 가르쳐주는 여러 가지의 증후를 어떻게 깨닫는가가 자신의 실존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나바호도 여느 이누이트 족처럼 죽은 사람들을 본다. 에니스 시에는 로즈라는 이름의 신비로운 분위기의 중년 여성(피오나 쇼)이 있는데, 당초 7명의 연구원 동사체가 발견된 것도 이 로즈의 죽은 남자가 그녀를 인도했기 때문이다. <트루 디텍티브: 나이트 컨트리>는 동토(凍土)의 얼음 자연이 만들어 내는 위압의 아우라 속에서 인간들이 빚어낸 위악이 어떤 비극을 잉태하고 또 은폐하는지를 보여준다. 댄버스와 나바호가 결국 찾고, 잡아낸 것은 진실의 일단일 뿐이다. 진실은 차가운 얼음냉수의 저 깊은 바닷속에 숨겨져 있다. 물속에 시체를 유기할 때는 허파에서 바람을 빼야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이 드라마가 얘기하고자 하는 진실과 정의, 뭐 '그 따위' 것들은 북극해의 저 밑바닥에 바람이 빠진 채 가라앉아 있다.

 나이트 컨트리> 스틸 컷. / 사진. ⓒMichele K./HBO

<트루 디텍티브: 나이트 컨트리> 스틸 컷. / 사진. ⓒMichele K./HBO

드라마는 시종일관 이누이크족의 전통적 신비주의와 죽은 자들이 만들어 내는 공포, 극한의 추위가 빚어내는 심리적 압박감으로 에피소드 6부 전체를 옥죄어 낸다. 그 서스펜스와 스릴감의 만족도가 꽤나 높은 작품이다. <트루 디텍티브> 시리즈는 1편을 따라갈 수가 없다. 2편 역시 심도가 깊었던 작품이다. 이번 4편은 1편의 미스터리 분위기를 가장 잘 따라가고 있는 작품이다. 조디 포스터는 1편의 매튜 맥커너히가 지닌 통찰의 신비를 이어 나간다. 사람의 통찰력, 예지력은 때로는 이론적으로 일일이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트루 디텍티브> 시리즈의 매력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 세상과 인생의 모호한 신비주의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어쩌면 이해할 필요가 없는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그런 것은 수학이나 물리학, 과학적 사고로 습득되거나 통달 되는 것이 아니다. 마치 득도의 순간처럼 인생의 진리가 한꺼번에 당도하게 되는 식이다. <트루 디텍티브> 시리즈는 보고 있는 어느 순간에 그런 통독(通讀)의 순간이 온다. 그런 매력을 지닌 드라마는 그리 많지가 않다.

멕시코 출신의 이사 로페스가 각본, 쇼러너 연출(전체 중 앞의 1, 2부 정도를 감독하고 나머지는 프로듀서로 개입하는 것)을 맡았다. 이번 시즌4는 앞의 시즌 1, 2, 3과는 다른 작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르지만 매우 같은 작품이다. 어차피 인간의 마음속 심연을 다룬다는 점, 그 극도로 격렬한 충돌의 순간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연속선상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1962년생인 조디 포스터가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시즌4는 1회를 시작할 이유가 된다. HBO 작품이고 HBO OTT인 HBO MAX는 국내에서 볼 수가 없다. 이 드라마는 현재 쿠팡 플레이에 올라가 있다. 쳇. 쿠팡이라니…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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