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인사이트] 모든 길이 CES로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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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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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정보기술(IT) 관련 전시회의 최고봉은 누가 뭐래도 매년 초 미국에서 열리는 CES였다. 그러나 최근 CES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미국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던 중국 기업들의 참여가 미·중 관계 악화로 인해 급감하고 있으며, 한국의 대표 IT 대기업들 역시 CES 참가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다. 몇몇 기업에서는 내년부터 참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영향력 줄어드는 CES

[비즈니스 인사이트] 모든 길이 CES로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유럽 등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IT 전시회들이 눈에 띄게 약진하고 있다. 특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MWC는 중국 기업들의 대거 참여로 그 무게감을 더해가고 있다. 그 외에도 핀란드 헬싱키의 슬러시(Slush), 프랑스 그르노블의 테크앤드페스트(Tech&Fest), 파리의 비바테크(VivaTech), 포르투갈 리스본의 웹서밋(Web Summit) 등 유럽 전역에서 열리는 다양한 테크 전시가 전보다 더 주목받고 있다.

이들 전시회는 단순히 제품과 기술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밋업과 콘퍼런스 그리고 생태계 조성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핀란드의 슬러시는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주축이 돼 운영되며, 기존 전시와는 전혀 다른 에너지와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기업 역시 이런 다양성과 차별성에 맞춰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에 부합하는 전시회를 선택해 참가하고 있다. 모든 길이 CES로 통하던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는 것이다.

◇국내 전시회, 글로벌 위상 높여야

이런 세계적 흐름과 대조적으로 한국에서 열리는 IT 전시회는 여전히 국제적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IT산업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할 때, 그리고 K콘텐츠의 인기 덕분에 한국에 대한 세계인의 선망이 높아진 상황을 감안해 보면 이런 흐름은 분명 엇박자처럼 느껴진다.

그 원인 중 하나로 전시장, 호텔 등 마이스(MICE) 인프라가 글로벌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다른 국가들의 사례를 볼 때 이는 충분히 극복 가능한 문제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대부분의 대형 IT 전시회가 관 주도로 너무 자주 열리고 있다는 점이다.

공공 부문이 많은 예산을 투입해 주최하는 구조에서는 전시가 ‘비즈니스’로서의 자립성과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참가 기업을 보면 정부 지원을 받아 선발된 국내 기업이 대부분이며, 해외 기업 비중은 매우 낮다. 글로벌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심각한 한계다. 또한 대부분의 전시가 서울에서, 그것도 비슷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개최되고 있어 희소성이 떨어진다. 기업들은 전시 자체의 매력보다 주관 부처와의 관계, 체면 등을 고려해 참가하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과감한 조정’도 경쟁력

한국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서울시 등이 주최하는 비슷한 성격의 IT 전시회가 연중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다. 전시회마다 250~500개 기업이 참가하지만, 주제가 대체로 비슷해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각 부처가 나눠 집행하던 예산과 운영을 통합해 하나의 대표적인 글로벌 IT 전시회를 만든다면 어떨까. 이론적으로는 매우 타당한 방향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부처마다 목적이 다르고, 실적을 확보하려는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일이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시회의 중복 개최는 산업계의 부담을 키우고 관람객의 피로도도 높인다. 효율성과 파급력을 고려하면 국가 차원의 전략적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곧 새 정부가 출범한다. 국정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이런 전시회 문제는 사소하게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효율성과 국가 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반드시 정비돼야 할 구조다. 정부가 이 조정 역할을 해준다면 한국의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진정한 글로벌 IT 전시회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날을 기다리는 이들은 결코 적지 않다. 전 세계를 누비며 전시회에 참가하는 수많은 기업인 역시 같은 바람을 품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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