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업계 일부 대기업이 한국전력을 통하지 않고 도매시장에서 전기를 바로 사다 쓰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소식이다. 전력거래소 전기값이 한전의 산업용 전기값보다 낮다 보니 기업들이 전력거래소로 옮겨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전력거래소 전기료는 전력의 수요 예측과 입찰에 참여한 발전사들의 공급이 만나는 가격에서 정해진다. 최근에는 기업들이 한전에 송전 비용을 추가로 지급하거나 돈을 들여 자체 송전망을 구축하더라도 거래소에서 전기를 직접 구매하는 게 더 낫다고 한다.
한전과 거래소 간 전기료 역전은 문재인 정부의 전기료 동결과 윤석열 정부의 산업용 집중 인상 등 전력 포퓰리즘이 빚은 결과다. 한전은 2022년 이후 3년간 산업용 전기요금을 7차례에 걸쳐 68.7% 인상했다. 이 기간 주택·일반용은 38.8% 올리는 데 그쳤다. 각종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해 정부가 한전에 주택·일반용 전기료를 동결하거나 조금만 올리도록 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전기 직구 확산은 한전의 수익성 악화와 주택·일반용 전기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제 내놓은 기후에너지 공약은 ‘인공지능(AI) 3대 강국’을 꿈꾸는 나라의 에너지 정책인가 하는 의문을 들게 한다. 석탄·액화천연가스(LNG) 비중 축소와 재생에너지 확대에는 동의하지만 원전 비중을 유지한 채 AI 시대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어떻게 대응할지 이해가 안 된다. 한전은 2027년 AI 데이터센터 전기 소비가 2023년 대비 6배가량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해 재생에너지의 킬로와트시당 발전단가는 138원으로, 원전(66.4원)의 두 배 이상이다. 재생에너지로는 급증하는 전기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 뿐 아니라 비싼 비용 역시 문제다.
‘햇빛·바람 연금’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주민 소득을 늘리겠다는 정책 역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전남 신안군이 주민에게 햇빛 연금을 주고 있다지만 한전이 비싸게 전기를 사주고 있기에 가능하다. 이제라도 인기영합적인 정책에서 벗어나 AI 시대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에너지 정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