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가계대출 규제로 금융시장에 이상 흐름이 보인다. 카카오뱅크의 주택담보대출은 매일 오전 6시 접수가 시작되면 바로 한도가 소진되는 ‘오픈런’이 벌어지고 새벽부터 앱을 열어놓고 기다리는 요령까지 공유된다고 한다. 아파트 잔금대출을 받으려는 입주 예정자들이 정해진 시각에 휴대전화를 잡고 신청 경쟁을 벌이는 일도 생겼다. 대출 시장의 기이한 풍경이다.
더 황당한 것은 돈 갚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만 대출을 못 받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5대 은행 신용대출자의 평균 신용점수는 926점을 넘어섰고 마이너스통장 차주의 평균은 960점을 웃돈다. 신용점수 950점에 안정적 소득까지 갖춘 금융소비자도 은행 문턱에서 돌아서는 사례가 나온다니 신용 평가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볼 판이다.
금융의 기본원리는 분명하다. 은행은 차주의 소득과 상환능력, 담보와 신용도를 심사해 위험에 맞는 가격, 즉 금리를 매겨 돈을 빌려준다. 그런데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증가액을 은행별 총량으로 막으면서 이 원리가 마비됐다. 신용도보다 먼저 신청했느냐가 중요하고, 상환능력보다 당일 은행의 대출 한도가 남아 있느냐가 중요해졌다. 시장을 관리한다며 시장 기능을 억눌러버렸다. 가계부채 관리가 필요하다고 이런 식의 행정편의적 총량규제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규제 때문에 은행에서 밀려난 고신용자는 저축은행·카드사 등 더 비싼 금융권으로 향한다. 그러면 중·저신용자는 그 아래로 밀려난다. 이미 집을 계약한 실수요자가 잔금을 마련하지 못해 위약금을 걱정하고, 입주일을 앞두고 대출 창구를 찾아 헤매는 사태도 벌어진다. 아무 잘못 없는 정상적인 금융소비자들이 거친 정책으로 인한 비용을 떠안고 있다.
가계부채는 상환능력 중심의 건전성 규제를 정교하게 운용해 관리해야 한다. 개별 은행에 숫자를 할당하고 돈줄을 잠그는 방식은 해법이 아니다. 가격과 신용에 따라 자금이 배분되지 않는 금융시장은 필연적으로 우회 대출과 풍선효과, 금융 비용 상승을 낳는다. 은행 대출이 선착순 배급품처럼 된 것이나 오픈런 현상도 문제지만 더 걱정은 그 뒤다. 금융에서 신용도가 뒤로 밀리고 행정지침이 시장가격을 대신하면 왜곡은 쉽게 복구되지 않는다. 빗나간 금융정책의 후과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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