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최근 5년간 금융감독원에 등록된 보이스피싱 통장 12만6866개를 분석하고 대포통장 공급 조직 관계자와 피해자 등 58명을 인터뷰한 기획 ‘히든: 검은돈의 혈관, 대포통장’은 날로 조직화, 대형화하는 대포통장 제조와 유통 실태를 생생히 보여준다. 한 해 새로 개설되는 대포통장은 약 32만 개로 추산된다. 하루 평균 876개꼴이다. 예전에는 노숙인이나 불법 체류자의 신분증을 사들여 통장을 만들었지만 요즘은 유령회사를 차려놓고 대포통장만 전문으로 개설해주는 조직이 생긴 탓에 대포통장 공급량이 폭증했다.
유령회사 대포통장은 개인 명의 통장과 달리 사실상 송금 한도가 없어 수십억 원의 범죄 수익을 한꺼번에 인출할 수 있다. 또 회사 통장을 기반으로 가상계좌도 발급받을 수 있어 피해자가 신고하는 속도보다 빨리 새 통장을 개설하는 것도 가능하다. 보이스피싱이나 온라인 도박 같은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범죄 수익을 안전하게 실어 나르는 범죄 인프라인 대포통장이 있기 때문이다.
대포통장 유령회사를 만들기는 쉽다. 월 1만 원에 주소를 빌려 비상주 사무실을 차리고, 사무실과 재고가 없어도 통장을 파기 쉬운 온라인 쇼핑몰을 주 업종으로 내세워 은행 심사를 통과하는 식이다. 취재팀이 올해 금감원에 새로 등록된 보이스피싱 통장 1만7000개를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적발된 상위 3개사의 대표 이름이 같았다. 한 사람이 회사명과 주소가 다 다른 유령회사를 여럿 굴리며 대포통장을 찍어낸 것이다.대포통장 개설과 유통에 관한 감시망은 헐겁다. 취재팀은 유령회사가 국세청의 폐업 처분을 받은 후로도 그 회사 대포통장은 금융망에서 차단되지 않고 피해자 돈을 뜯어간 사례를 확인했다. 국세청은 “회사 통장 개설과 폐쇄는 금융위원회 소관”이라고 했고, 금융위는 “통장 주인이 자진 신고하지 않으면 폐쇄가 어렵다”며 서로 책임을 미뤘다. 제1금융권이 통제를 강화하자 새마을금고 같은 제2금융권으로 대포통장 발급 요청이 몰리면서 제2금융권이 범죄조직의 ‘숙주’ 역할을 하는 실태도 드러났다.
취재팀이 만난 대포통장 피해자들은 노후 자금으로 모아둔 900만 원을 잃은 68세 요양보호사, 딸 결혼 자금 1500만 원을 다 털린 59세 주부, 도박 사이트를 이용한 고교생 등 대부분 금융 약자들이었다. 서민 울리는 범죄에 정부는 관할 따지지 말고 내 일처럼 달려들어 검은돈의 통로인 대포통장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투자 사기도 보이스피싱도 근절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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