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가리고 말하면 차별 발언 간주[횡설수설/신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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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에 나가는 게 싫어지고 뛰고 싶은 의지가 줄어든다. 부디 축구를 계속 하게 해달라.” 스페인 명문구단 레알 마드리드의 핵심 공격수이자 브라질 국가대표인 비니시우스 주니오르(26)는 2년 전 기자회견에서 인종차별을 멈춰 달라면서 눈물을 보였다. 18세 때부터 스페인 리그에서 뛰어 온 그는 인종차별의 오랜 희생양이었다. 경기 때마다 관중석에서 “원숭이” “멍청한 XXX” 같은 야유를 받았다.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레알 마드리드 선수 전원이 비니시우스의 등번호인 20번 유니폼을 맞춰 입고 그라운드에 오르기도 했다.

▷올 2월에는 비니시우스가 유럽 챔피언스리그 경기 도중 상대 선수로부터 모욕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 선수가 유니폼 상의로 입을 가린 채 말을 한 게 포착돼 큰 논란이 됐다. 비니시우스는 “나를 원숭이라고 불렀다”고 주장했지만 상대 선수는 완강히 부인했다. 조사에 나선 주최 측은 입 모양을 알 수 없어 인종차별 발언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킬리안 음바페, 리오넬 메시, 네이마르 같은 세계적 선수들은 “우리가 비니시우스”라고 지지 메시지를 내며 대책을 촉구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축구에 ‘비니시우스 룰’이 도입됐다. 상대 선수와 대립하는 상황에서 입을 가리면 혐오 발언을 한 것으로 간주해 즉시 퇴장시키기로 한 것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잔니 인판티노 회장은 “숨길 게 없다면 말할 때 입을 가리지 않는다. 아주 간단한 문제”라고 했다. 입을 가리는 것 자체로 증거 인멸 행위라는 선언이었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 1호 퇴장 사례가 나올지 관심이 높았는데 20일 파라과이 선수가 튀르키예 수비수와 설전을 벌이다 손으로 입을 가린 게 비디오 판독(VAR)으로 드러나 레드카드를 받았다.

▷같은 팀끼리는 입을 가리고 말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선수들은 경기 중 욕이나 농담을 주고받을 때 고화질 카메라에 입 모양이 읽혀서 논란 되는 걸 피하기 위해 종종 입을 가린다고 한다. 감독이 선수에게 긴급한 지시를 하면서 전술이 노출되지 않도록 입을 가리는 경우도 있다. 상대 선수의 평정심을 무너뜨리려 “그거밖에 못 하냐” 같은 말을 툭툭 던지는 ‘트래시 토크(trash talk)’도 흔히 오가는데 혐오 표현이 없고 입을 가리지 않았다면 허용된다. 하지만 상대와 충돌하는 상황에서 입을 가렸다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축구는 전 세계에서 고르게 사랑받는 대표적인 스포츠다. 유럽 빅리그에는 각국의 대표 선수들이 모여들고, 그에 따라 팬층도 전 세계로 넓어지고 있다. 그런 축구장이 인종차별로 얼룩지면 선수 개인의 인격권이 침해되는 건 물론, 그를 응원하는 팬들도 상처를 입고 고개를 돌릴 것이다. 그라운드에 혐오가 숨어들지 못하도록 단호히 선을 그어야 축구의 위상과 명예를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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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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