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속도내는 배드 뱅크 설립, 도덕적 해이 대책 꼭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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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소상공인 채무 조정을 위한 배드 뱅크 설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인 부채 탕감을 위해 금융기관이 보유한 부실 자산이나 부실 채권을 전문적으로 사들여 처리하는 기관을 만드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 금융위원회는 이 정부의 첫 추가경정예산안에 배드 뱅크 설립 자금을 넣는 방안을 기획재정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산하에 특수목적기관(SPV) 형태의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신용회복위원회와 민간 재단 등 비영리 법인을 축으로 삼아 부실 대출을 매입, 소각까지 단행하는 식이다.

자영업자 등 취약 계층에 대해 정부가 채무를 덜어주는 데 대해서는 이견을 달기 어렵다. 상환 능력이 없는 이들의 빚을 탕감해 재기 발판을 마련해 주고 삶의 의지를 불어넣는 일은 나름대로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 민간 금융기관들도 회수 가망이 없는 채권을 싼값에 배드 뱅크에 넘기는 게 나을 수 있다. 은행권의 개인사업자 대출연체율이 1분기 기준 0.71%로 2022년 코로나 19 위기 당시(0.37%)보다 훨씬 악화돼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면도 있다. 더구나 기한을 연장해 준 소상공인 코로나 대출 47조 4000억원이 9월 만기 도래를 앞두고 있어 취약 계층의 부담은 더 가중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빚 탕감이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배드 뱅크 설립에 정부가 넣을 막대한 종잣돈은 거저 생기는 게 아니다. 모두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돈이다. 때문에 도덕적 해이를 걸러낼 옥석 가리기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채무자들의 재산 상태를 정밀하게 확인하고, 자구 노력에 적극 응하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식이어야 한다.

또 하나는 빚 탕감이 새 정부 출범 때마다 되풀이돼선 곤란하다는 점이다. ‘빚 갚는 사람이 바보’라는 분위기가 만연할 수 있고, 성실하게 채무를 이행한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에 빠질 수 있다. 사회적 갈등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이 정부는 빚 탕감에 먼저 나섰던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의 사례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부작용을 막을 방안을 찾기 바란다. 빚 탕감은 선심성 선물이 아니라 약자를 구할 튼튼한 동아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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