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 9명은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지만, 이 중 3명만 대통령이 직접 지명하고, 3명은 국회 선출, 3명은 대법원장 지명 뒤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헌법에 정해져 있다. 국회 몫 3명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은 절차적·형식적 권한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한 대행은 지난해 말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국회가 선출한 재판관 후보자 3명에 대한 임명을 거부했고, 이는 국회가 한 대행을 탄핵소추한 주요한 사유가 됐다.
당시 한 대행이 제시했던 논리는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 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는 것이었다. 헌재는 한 대행에 대한 탄핵안을 기각했지만 국회 추천 재판관 후보자 임명 거부는 “헌법상 구체적 작위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대통령 고유 권한” 운운하며 형식적 ‘임명권’조차 행사하지 않았던 한 대행이 이제 와서 실질적 인사권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 몫 재판관에 대한 ‘지명권’을 행사한 것이다.
더욱이 후보자 중 한 명인 이완규 법제처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로 대선캠프 법률팀의 핵심 중 한 명이었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냈다. 탄핵된 대통령의 대선을 도왔고 그 내각의 각료로 일해온 인물이 헌정 질서의 보루인 헌법재판관에 적임인지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이 처장은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 ‘안가 회동’을 가진 4명 중 1명으로, 내란 방조 혐의 피의자로 경찰에서 조사받기도 했다.50여 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중립적으로 관리해야 할 한 대행이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선 형국이다. 대체 무슨 곡절이 있길래 한 대행이 지명권을 행사했는지, 그것도 논란이 큰 인물을 지명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에선 ‘윤 전 대통령 관련설’, ‘국민의힘 대선 후보 차출론’ 등과 맞물려 온갖 억측마저 나오고 있다. 한 대행의 모순적 행보가 혼란스러운 정국을 더 어지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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