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들의 집권 초기 가장 ‘클래식한’ 일정은 전통시장과 군부대 방문이다. 전통시장에선 아이를 안고 셀카를 찍고 장을 보며 상인들과 대화를 한다. 군부대에서 장병들을 만나 함께 파이팅을 외치는 장면은 ‘신입 대통령’이 거쳐야 하는 일종의 ‘사진 코스’다. 서민경제를 상징하는 시장은 물가, 경기, 민생이라는 키워드가 있고 군부대는 군통수권자의 권위와 굳건한 안보를 시각적 이미지로 보여줄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취임 후 2주간 수많은 일정을 소화하며 집권 초기 이미지를 쌓아 가고 있다. 6일에는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남성시장을 찾았고, 13일에는 경기 연천군 25사단 비룡전망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만났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1박 3일의 첫 순방 일정도 소화했다.
특히 5일 열린 첫 국무회의에서 나온 ‘김밥 국무회의’ 사진은 이전 정부의 사진 스타일과는 달라 주목을 받았다. 한 줄짜리 김밥에서 하나를 입에 넣고 있는 이 대통령과 표정 없이 김밥을 먹고 있는 전 정부의 국무위원들을 담고 있는데, 공식적이고 통제된 이미지를 주로 제공했던 이전 정부와 달리 정제되지 않고 현장감을 살린 사진으로 평가된다. 역대 정부도 일반적인 대통령의 이미지를 탈피해 새롭고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해왔고, 이 과정에서 때로 잡음도 불거졌다.윤석열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미국 백악관처럼 매일 기자 앞에서 질문받는 모습을 보이는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을 총 61차례 진행했다. 탈권위의 상징으로 시행했지만 취임 6개월 만에 한 언론사와 충돌을 겪은 직후 중단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다음 날 점심 식사 후 청와대 경내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당시 임종석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비서관 등과 산책을 즐기는 모습을 노출했다. 이는 당시 소통과 권위 내려놓기를 상징하는 대표적 장면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행사 자체를 기획하고 동선까지 연출했다는 논란도 남겼다.
외국 대통령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은 2021년 1월 취임한 뒤 그해 5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직접 초콜릿칩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직원들과 대화하며 소탈한 모습을 노출했다. 쥐스탱 트뤼도 전 캐나다 총리는 2015년 취임한 뒤 다운타운 지하철에서 시민들과 셀카를 찍었다. 막내아들 아드리앙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기도 있다. 리시 수낵 전 영국 총리도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며 일반인과 다르지 않은 ‘생활형 지도자’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지난 3년간 윤석열 정부는 ‘비공개 사진’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기자들이 충분히 취재할 수 있는 행사를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했고, 이후 입맛에 맞는 사진만 제공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의정 갈등 후 8차례 병원을 찾고도 기자들을 동행하지 않았다. 또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와의 ‘차담 회동’은 지금까지 최악의 정치 이미지 연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윤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순천만 정원 방문, 캄보디아 심장병 아동 면담 장면은 개인 소셜미디어에 올릴 법한 이른바 ‘화보 사진’으로 권력 남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대통령이 연설하거나 재난 현장을 찾는 장면을 사진에 담는 행위는 국가의 통치력을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과도하게 연출된 사진은 되레 논란만 부르고, 거칠어도 자연스러운 장면은 더 큰 감동이나 신뢰를 주기도 한다. 대통령의 사진 한 장은 권력의 최정점에 있다는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각인시킬 수도 있고, 중요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통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카메라를 노려보며 눈썹을 치켜올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식 사진처럼 사진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대다. 대통령의 사진은 단순한 초상사진이 아니다. 표정과 자세, 복장, 누구와 함께 있느냐는 권력의 스타일과 태도를 보여 줄 수 있다.최혁중 사진부 차장 sajinman@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