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뿐인 정부효율부 100일?…머스크가 얻은 것들 [트럼피디아]〈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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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백악관 내각회의에 참석한 머스크. 워싱턴=AP 뉴시스

지난달 30일 백악관 내각회의에 참석한 머스크. 워싱턴=AP 뉴시스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 수장(54)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약 100일 만에 일선에서 물러났다. 완전히 손을 떼지는 않겠다고 밝혔으나 트럼프 행정부 내 존재감이 부쩍 줄어들 전망이다. 한때 일주일 내내 워싱턴에서 숙식하며 정부효율부 안착에 매진했던 그는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앞으로 정부효율부에 사용하는 시간을 ‘주 1일’ 수준으로 줄일 예정”이라고 했다.

앞으로 머스크는 정부효율부를 비롯해 테슬라, 스페이스X, 뉴럴링크, 보링컴퍼니, X, xAI 운영에 고루 시간을 쓰며 공직과 사업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 실적 악화라는 사업적 어려움에도 머스크가 정부효율부 활동을 통해 얻어간 것은 무엇일지, 운영 기한이 내년 7월까지인 정부효율부의 앞날은 어떻게 될지 살펴봤다.

● 테슬라에는 손해, 우주사업에는 이득

테슬라는 전기차 구입에 적극적이던 진보 성향 유권자들이 ‘반(反)머스크’ 불매운동을 벌이며 큰 타격을 입었다. 올 1분기(1~3월) 순이익이 1년 전에 비해 71% 급감했다. 그러나 테슬라를 비롯해 머스크의 사업 대다수가 연방정부 계약 및 보조금과 직결돼 있다. 이에 정부효율부 경험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머스크의 사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부 기조가 수정되려는 조짐이 보인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2일 2026년 회계연도 예산안을 공개하며 화성 유인 탐사 관련 예산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예산을 전년 대비 24.3%(약 60억 달러) 삭감하면서도 머스크의 오랜 꿈인 화성 탐사에는 힘을 실어준 것이다. *머스크가 44년간 품어온 화성 탐사의 꿈은 트럼피디아 9화에서 다뤘다.

스페이스X의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가 연방항공청(FAA)의 24조 달러(약 3조 원) 규모 관제 통신망 사업권을 따낼 가능성도 점쳐진다. 연방항공청은 올 2월 스타링크 서비스를 알래스카주와 뉴저지주에 처음으로 시범 도입한 상태다. 연방항공청 청장 대리가 올 3월 상원 청문회에서 “관세 통신망 업그레이드가 시급하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정부 요직에 머스크와 가까운 인물들이 기용된 점도 주목된다. 나사 수장은 스페이스X 우주선을 타고 우주 비행을 두차례 한 사업가 재러드 아이잭먼(42)이 맡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시한 국부펀드의 설립은 머스크의 2022년 트위터 인수 당시 자문을 맡은 투자은행 모건 스텐리 출신 금융인 마이클 그라임스가 주도하고 있다. 머스크가 화성 식민지 건설을 위한 지식을 쌓기 위해 정부효율부를 활용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는 이해충돌과 월권 논란에도 재무부, 상무부, 국세청(IRA), 에너지부, 보건부, 교육부 등 연방 부처의 각종 민감 정보를 열람했다. 3월에는 국방부를 방문해 중국과 전쟁 발발 시 작전계획을 보고받으려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알게 돼 무산된 사건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텍사스주에 있는 스페이스X의 로켓 발사 시설 ‘스타베이스’에서 스타십 발사를 지커보는 머스크(맨 왼쪽)과 트럼프 대통령(왼쪽 두번째). 보카치카=AP 뉴시스

지난해 11월 텍사스주에 있는 스페이스X의 로켓 발사 시설 ‘스타베이스’에서 스타십 발사를 지커보는 머스크(맨 왼쪽)과 트럼프 대통령(왼쪽 두번째). 보카치카=AP 뉴시스
정부효율부 활동과는 별개로 ‘초소형 도시’ 건설에도 착수한 상태다. 스페이스X 로켓 발사시설이 있는 텍사스주 최남단에 발사시설의 이름을 딴 도시 ‘스타베이스’의 탄생을 결정짓는 찬반 투표가 3일 열렸다. 이 지역에 주소지를 둔 유권자 283명 대부분은 스페이스X 직원이라 거뜬히 가결될 전망이다. 스페이스X 만을 위한 3.9㎢ 규모(여의도 면적의 약 1.3배)의 도시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머스크는 화성에 정부를 직접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스페이스X 관련자 20명 이상을 인터뷰해 “머스크가 소유한 기업의 진짜 쓰임은 화성 식민지 건설”이라는 분석을 내놨는데, 이 연장선에서 정부효율부 경험과 스타베이스 건설은 머스크에게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 정부효율부가 뿌린 씨앗들

머스크가 정부효율부 수장으로서 낸 성과를 두고는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2조 달러 삭감이라는 당초 계획과 달리 1500억 달러 삭감에 그쳤고, 정리해고된 공무원 수만 명도 법원 제동에 따라 복직하는 등 예상 이하라는 평가도 받는다.

반면 정부 대개편에 초석을 놓은 것까지가 머스크의 역할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머스크 주도로 정부효율부가 연방부처들의 핵심 정보를 수집해 트럼프 행정부 4년간 이어질 작업에 추진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지난달 10일 내각회의에 참석한 보트(왼쪽 뒤에서 두번째). 워싱턴=AP 뉴시스

지난달 10일 내각회의에 참석한 보트(왼쪽 뒤에서 두번째). 워싱턴=AP 뉴시스
머스크를 이을 트럼프 행정부 내 숨은 실력자로는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장(49)이 꼽힌다. 트럼프 행정부 1기에서도 예산관리국장을 지냈고 충성파로 분류된다. 그는 이번 내각에서 유일하게 같은 직책으로 복귀했다.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인물이다.

머스크와는 정반대 성격을 지녔다고 한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보트는 머스크와 달리 신중하고, 집중력이 있으며, 디테일에 강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예산관리국 고문으로 일한 바비 코건 미국진보센터 선임국장은 “트럼프 행정부에는 함량 미달인 인물이 여럿 있으나, 보트는 매우 똑똑하고 신중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올 1월 열린 상원 인준청문회에 나온 보트. 워싱턴=AP 뉴시스

올 1월 열린 상원 인준청문회에 나온 보트. 워싱턴=AP 뉴시스
그간 전면에 나서지 않았으나, 트럼프 2기 행정부 전반에 깊이 관여한 인물로 꼽힌다. 직책 상으로는 예산 담당이지만 행정부 운영 기조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보트가 미국 정부를 트럼프식으로 재편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라며 “워싱턴에서 연방정부의 작동 원리를 그보다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트럼프 행정부 일각에서 정부 구조조정을 두고 “머스크는 얼굴, 보트가 설계자”라는 인식이 있다고 전했다.

보트가 이른바 ‘실리콘밸리식 구조조정’을 부추겼을 가능성도 있다. 신속하고 거친 실행으로 여러 논란에 휩싸인 정부효율부는 공직 사회에 큰 상처를 남겼는데, 이 또한 보트의 설계에 부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로퍼블리카에 따르면 보트는 2023년 비공개 연설에서 “관료 집단을 악당으로 몰아가고, 이들에게 정신적 트라우마를 줘서 아침에 출근하기 싫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올 2월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행사에 등장한 머스크가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선물한 전기톱을 휘두르고 있다. 그는 “이 전기톱은 관료주의를 위한 것”이라며 “나는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됐다”고 했다. 옥손빌=AP 뉴시스

올 2월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행사에 등장한 머스크가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선물한 전기톱을 휘두르고 있다. 그는 “이 전기톱은 관료주의를 위한 것”이라며 “나는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됐다”고 했다. 옥손빌=AP 뉴시스
보트는 자칭 ‘복음주의 보수주의자’다. 일리노이주의 복음주의 기독교 대학 위튼칼리지 출신으로 2021년 보수 싱크탱크 ‘미국 재건 센터’를 설립했다. ‘신 아래 국가로 미국을 재정립하는 것’이 이 싱크탱크의 설립 이념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청사진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의 ‘프로젝트 2025’ 보고서도 공동 집필했다. 그는 미국 정부와 미국 문화가 “마르크스주의를 추종하는 좌파 기득권 관료에 장악당했다”며 ‘딥 스테이트(그림자 정부)’ 해체를 앞장서 주장했다.

의회를 통하지 않고도 원하는 정책을 속도감 있게 집행하기 위해 행정명령을 쏟아내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운영 전략에도 보트가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로퍼블리카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미 대선 기간에 행정명령 초안을 미리 작성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 폐지, 교육·환경·복지 분야의 연방정부 역할 축소 등을 지시하는 행정명령 수립에 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의 계획은 뭘까. 한때 보수 진영에서도 급진적이라고 평가받던 그의 주장은 최근 힘을 얻고 있다. 정부효율부와 백악관 예산관리국을 활용해 정부 곳곳에 친트럼프 인사를 채워 넣는 한편, 대통령의 권한을 최대한 확대하려는 시도에 나설 전망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보트가 의회 권력 약화와 헌법 재해석을 위해 필요한 전략을 짤 것”이라고 내다봤다.

22화 요약: 일론 머스크는 정부효율부 활동을 통해 자신의 우주사업에 유리한 기반을 다진 것으로 보인다. 정부효율부의 ‘얼굴’이었던 머스크는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실세이자 전략가로 꼽히는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은 남는다. 그는 정부 개편 작업을 안정적으로 이어가며 대통령 권한 확대, 복음주의 보수주의 실현, 관료제 해체를 동시에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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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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