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는 함께, 보상은 따로"…판교 IT업계 첫 파업 줄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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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6.11 17:05 수정2025.06.11 17:06

국내 정보기술(IT) 산업의 중심지 판교에서 잇따른 파업 선언이 이어지며 그동안 조용하던 IT 업계 노동계 들썩이고 있다. 카카오·네오플·한컴 등 주요 기업 노조가 ‘성과에 비례한 보상’과 ‘일방적 의사결정 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설립 이래 첫 파업에 나선 것이다. 빠른 성장을 견인한 직원들의 기여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단순 임금 투쟁을 넘어 경영 투명성과 조직문화 개혁을 향한 압박으로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성과는 함께, 보상은 따로”…카카오, 임단협 결렬로 첫 파업 선언

카카오는 노조 출범 6년 만에 첫 파업에 나선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지회(크루유니언)는 10일 “카카오모빌리티가 실적 호조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성과에 걸맞은 합리적 보상안을 내놓지 않았다”고 파업 이유를 밝혔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해 매출 6750억원, 영업이익 93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12%, 140% 증가한 것으로 노조는 실적 개선에 따른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지회(크루유니언)가 지난 3월 경기도 성남시 카카오 판교아지트 앞에서 포털 서비스 ‘다음’을 운영하는 콘텐츠 CIC(사내독립기업)의 분사에 반대하는 집회를 벌이는 모습./사진 = 연합뉴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지회(크루유니언)가 지난 3월 경기도 성남시 카카오 판교아지트 앞에서 포털 서비스 ‘다음’을 운영하는 콘텐츠 CIC(사내독립기업)의 분사에 반대하는 집회를 벌이는 모습./사진 = 연합뉴스

카카오노조는 11일 2시간 부분파업을 시작으로 18일에는 4시간 부분파업과 대규모 집회를 열고 25일에는 전면 파업을 예고했다. 지난 3월 포털 사이트 ‘다음’ 분사에 따른 고용 불안을 규탄하는 집회는 있었지만 파업은 카카오 계열사 전체를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노조와 합의점을 찾는 중이라며 파업에 따른 서비스 이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해나가겠다고 전했다.

네오플과 한컴 노조도 각각 파업에 나선다. 네오플 노조는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의 중국 흥행으로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인 1조 3783억원을 달성했음에도 개발 인력에 대한 성과급이 기존의 3분의 2 수준으로 줄었다며 10일 야근 거부를 시작으로 주말 근로도 거부하겠다고 예고했다. 한컴 노조도 회사가 제시한 4.3% 임금 인상률이 과거 평균보다도 크게 낮은은데다 지난해 매출액이 3048억원에 이르며 창립 이래 최대 실적을 냈는데 사측이 직원들의 성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며 파업을 예고했다.

더이상 수평적이지 않은 판교식 소통에 ‘연대’하는 IT 노조들

IT업계 노조 간의 연대 움직임도 뚜렷해지고 있다. 카카오 노조는 파업 첫날인 11일 네이버 노조(공동성명) 집회에도 참여한다. 네이버 노조는 같은 날 성남시 네이버 본사에서 최인혁 네이버 전 최고운영책임자(COO)의 복귀에 반대하는 2차 집회를 연다. 앞서 네이버 노조도 지난 3월 카카오의 다음 분사에 반대하는 집회에 연대 참여한 바 있다.

이 같은 연대의 배경에는 ‘복지 개선’을 넘어 ‘경영 투명성’과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다. 판교 IT업계의 한 관계자는 “창업 2~30년이 지난 주요 IT기업들도 더 이상 수평적 소통 구조를 유지하지 못하면서 젊은 직원들 사이에 불만이 누적돼 왔다”며 “노조가 이를 견제하는 역할을 점차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 2차 집회는 2021년 네이버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최인혁 전 네이버 COO가 지난 5월 테크비즈니스 부문 대표로 복귀한 데 대한 반발에서 비롯됐다. 오세윤 네이버 노조 지회장은 지난달 27일 열린 1차 집회에서 “회사 측의 일방적인 소통 방식에 대해 조합원들이 이제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판교발 파업과 집회를 두고 중장기적 조직 문화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IT업계 특유의 성과, 경쟁 중심 문화가 이젠 구성원 전체가 성과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재편돼야 할 시점”이라며 “이번 파업은 그 신호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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