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선언’ 30년, 국익 위한 인도적 지원 정책[기고/박인휘]

2 days ago 8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세계화는 우리 민족이 세계로 뻗어나가 세계의 중심에 서는 유일한 길입니다. 1995년을 ‘세계화의 원년’으로 만듭시다.” 1995년 1월 1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신년사를 통해 선언했던 그 유명한 ‘세계화 선언’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같은 해 3월 190개 국가 정상이 모인 ‘코펜하겐 사회개발 정상회의’에서 김 전 대통령은 이렇게 강조했다. “한국은 많은 개도국에 좋은 본보기가 되고, 선·후진국 간에 바람직한 협력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로 세계화 선언은 30주년을 맞이했다.

2011년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가 열렸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의 일원이 되었으며, 최근 들어서는 개발 협력 예산이 약 6조5000억 원, 특히 인도적 지원 정책 예산은 7000억 원 수준으로 크게 늘어났다. 세계화로 인해 번영과 민주주의가 전 세계에 빛을 발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은 사라진 지 오래고, 기후변화, 테러, 종교 분쟁, 불법 이민, 인종 갈등, 질병, 자원 전쟁에서 보듯이 인간 삶의 모든 조건들이 분쟁의 대상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인도적 위기에 몰린 세계 인구가 늘어났다.

국제사회를 향한 인도적 지원 정책은 선진국 조건의 상징처럼 되었는데, 비교적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과는 결을 조금 달리하면서 인간이 가진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켜야 하는 인류 전체의 마지노선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인류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은 당연히 우리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해서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협력 전략을 선택하거나 선진국이 주도하는 사업에 합류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사업 집행 과정의 투명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지만 각종 모니터링 시스템과 정보 공개 수준이 개선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암초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심각한 균열을 보이면서 국가 이기주의가 확산되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재집권을 계기로 미국국제개발처(USAID)의 해체를 선언했다. 유럽의 선진국이 국제 원조 사업 예산을 줄이는 상황은 인도적 지원의 중요성을 회피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고, 국제사회를 위한 미국의 책임감은 트럼피즘의 과녁이 되었다. 하지만 특정 국면에서 예산이 줄고 느는 상황의 변화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국제사회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인류 전체의 공감대가 깨진 적은 없었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고갈 혹은 거대 질병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건 너무나 자명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싫든 좋든 한국은 독특한 경제 구조로 인해 국제사회와 운명 공동체가 되었다. 인도적 지원 정책을 위한 노력은 결국 우리의 국가이익으로 돌아올 것이고, 따라서 정책에 대한 확실한 철학과 일관성이 중요하다. 제국주의적 권력을 휘둘러 본 여타 선진국과는 다른 국가 정체성을 가졌다는 점 역시 인도적 지원 정책의 효과성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관련 법도 정비해야 하고, 조직과 예산도 더 늘려야 하고, 국민적 공감대도 공고히 해야 하는 등 할 일이 태산이다. 그래도 정책을 개발하는 정부 부처의 높은 전문성과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현장 능력은 지금처럼 자유주의 질서가 잠시 움츠러드는 순간 더욱 힘을 발휘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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