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사슬에 묶인 19세기판 ‘미의 여신’… 노예제 미국을 폭로하다[양정무의 미술과 경제]

1 week ago 8

美 최초 여성 누드상의 정치적 반향

기원전 1세기경 제작된 ‘메디치 비너스’(왼쪽 사진)와 미국 조각가 하이럼 파워스의 ‘그리스 노예’(이 작품은 1846년 버전). 두 작품 모두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에서 완성된 여성 누드 조각상을 바탕으로 제작돼 크기나 자세가 비슷하다. 사진 출처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미술관·미국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기원전 1세기경 제작된 ‘메디치 비너스’(왼쪽 사진)와 미국 조각가 하이럼 파워스의 ‘그리스 노예’(이 작품은 1846년 버전). 두 작품 모두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에서 완성된 여성 누드 조각상을 바탕으로 제작돼 크기나 자세가 비슷하다. 사진 출처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미술관·미국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조각 작품을 이야기할 때 1844년에 완성된 ‘그리스 노예’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대리석 조각은 미국 최초로 여성 누드를 본격적으로 재현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노예제 논쟁과 이어지면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이 작품을 제작한 미국의 조각가 하이럼 파워스(1805∼1873)는 일찍이 유럽 고전 조각 전통에 깊이 매료돼 이탈리아 피렌체에 머물면서 작업 활동을 펼쳤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이 조각품은 그리스 독립전쟁(1821∼1829) 당시 튀르키예인들에게 납치돼 노예 시장에서 막 팔려 나가는 비운의 그리스 여인을 표현하고 있다. 완전히 벌거벗겨진 젊은 여성은 양손이 사슬로 묶인 채 야만적인 시선에 둘러싸여 있다. 기둥을 덮고 있는 이 여인의 옷자락 속에는 십자가 목걸이가 걸려 있어 구원의 희망을 조심스럽게 갈망하는 듯하다.

이 조각상은 당시 미국에서 대중에게 공개된 최초의 본격적인 실물 크기의 여성 누드상이었다. 청교도적 윤리의식이 강했던 19세기 미국 사회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조각은 그 자체로 논란이 됐다. 그러나 조각가는 이 조각을 그리스 독립전쟁하에 탄압받는 기독교인이라는 역사적 설정을 통해 극복해 낸다.

결과적으로 그의 조각상은 놀라운 반향을 일으켰다. 1847년 그리스 노예 조각상은 뉴욕을 기점으로 여러 도시를 순회하면서 4개월 동안 10만 명의 유료 관람객을 끌어들였다. 당시 1인당 입장료는 25센트로 약 8600달러를 벌어들였다. 당시 숙련된 노동자의 일당이 1달러 정도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입장료가 상당히 높았다고 볼 수 있다.

일부 전시에서는 전라의 여성 조각을 남녀 관객이 동시에 관람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남녀가 각각 따로 관람하기도 했다. 동시에 관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조각상은 회전식 받침대 위에서 천천히 돌아가면서 조명을 받는 방식으로 전시되기도 했다. 여기에 극적인 현장 해설까지 곁들어졌다고 하니, 하나의 조각상이지만 고가의 입장료를 낼 만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그리스 노예는 1851년 런던 만국 대박람회에 이어 1855년 파리 박람회에도 초청돼 크게 주목받았고 조각가 파워스는 단숨에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됐다.

1851년 영국 런던 만국 대박람회의 미국관 중심에 하이럼 파워스의 조각상이 놓여 있는 모습을 나타낸 존 앱솔론의 석판화. 사진 출처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1851년 영국 런던 만국 대박람회의 미국관 중심에 하이럼 파워스의 조각상이 놓여 있는 모습을 나타낸 존 앱솔론의 석판화. 사진 출처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그런데 그리스 노예가 일으킨 논란은 단순히 파격적인 누드 형상에 그치지 않았다. 사슬에 묶인 채 백인 여성의 노예로 팔려 나간다는 설정은 자연스럽게 미국 내 흑인 노예제의 현실을 환기시켰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노예제 옹호론자와 폐지론자 모두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자는 노예제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후자는 노예제의 비인간적 모습을 강렬하게 폭로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노예제 폐지론자에게 더 강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그리스 노예를 자신들의 정치적 상징물로 삼기도 했다. 예를 들어 노예제 폐지론에 적극 앞장섰던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자신의 응접실에 이 조각의 복제품을 둘 정도로 그리스 노예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백인 노예의 형상에 미국의 흑인 노예를 대입시키면서 노예제의 부조리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파워스의 그리스 노예 조각상은 기원전 4세기 그리스에서 완성된 여성 누드 조각상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에 있는 ‘메디치 비너스’상도 기본적으로 기원전 4세기의 모델을 재현한 것이다. 두 조각을 나란히 놓고 보면 크기나 자세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파워스는 2000년 전 미(美)의 여신 비너스를 현대의 노예로 급변시켜 미학적, 정치적 반향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그리스 노예의 원형이 완성되던 고대 그리스의 경제 체계가 노예제였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경제학(economics)’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아(oikonomia)’다. 이는 ‘집(oikos)’과 ‘법 또는 질서(nomos)’의 합성어로, 풀이하자면 ‘가정을 잘 운영하는 법’을 의미한다.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는 가정당 평균 1, 2명의 노예가 있었기 때문에, 경제학의 어원적 의미에는 ‘노예를 어떻게 다루느냐’와 직결되는 문제가 담겨 있던 것이다. 이렇게 경제학의 어원이 될 만큼 뿌리 깊은 노예제 경제 체계가 최종적으로 붕괴하는 데 있어서 바로 고대 그리스 여성 누드 조각을 노예로 변신시킨 작품이 역할을 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미국에서 노예 해방은 1861년부터 4년간에 걸친 치열한 내전을 통해 최종적으로 이뤄졌다. 고대 이후 수천 년간 누적된 노예제의 병폐가 1844년 제작된 조각상 하나가 일으킨 나비효과로 붕괴됐다면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 하지만 오래된 낡은 조각 형식도 역사적 문제에 맞춰지면 거센 파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정도의 평가는 충분히 내릴 만하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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