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윤 기자]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며 금융시스템의 새로운 축으로 떠오른 가운데, 위기 상황에서 달러와 일대일(1:1) 보장 약속이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스테이블코인의 가격 변동성과 규제 사각지대 등으로 인해 기존 통화정책과 금융안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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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서울 소공동 플라자호텔에서 기재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동 개최한 ‘2025년 주요 20개국(G20) 글로벌 금융안정 컨퍼런스’에 참석자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KDI) |
스테이블코인 부작용 산적
이냐키 알다소로 국제결제은행(BIS) 이코노미스트는 3일 서울 소공동 플라자호텔에서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동 개최한 ‘2025년 주요 20개국(G20) 글로벌 금융안정 컨퍼런스’에서 “위기 상황에서는 투자자들이 안정적 자산을 선호하기 때문에 스테이블코인의 달러와의 1:1 약속은 시험대에 오를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알다소로 이코노미스트는 “시장 규모가 이미 290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고, 일부 발행사가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며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등 기축통화에 연동되지만, 실제 거래에서는 가격 변동성을 보이며 완전한 돈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신흥국에서 스테이블코인의 광범위한 사용이 통화정책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자본유출을 촉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스테이블코인이 투자하는 국채나 단기 금융상품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으며, 시장 불안시 급격한 자금 이동으로 금리가 급등·급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사이버 범죄와 자금세탁 위험도 여전히 상존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자산 특성상 국경을 넘어 빠르게 이동할 수 있어, 기존 금융거래보다 추적과 규제가 어렵다. 그는 “이러한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국제적 규제 공조와 감독 강화, 금융안정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생성형AI·비은행 확산 우려
인공지능(AI)과 비은행 금융기관 확대도 국제금융의 리스크로 지목된다.
이형일 기재부 1차관은 개회사에서 “AI와 스테이블코인 등 금융의 디지털 전환은 금융시장과 통화체제의 혁신을 기대하게 하고 있다”면서도 “금융의 디지털 기술 발전이 예상치 못한 시스템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알다소로 이코노미스트는 “AI는 블랙박스 문제, 데이터 편향, 개인정보 보호 위협, 모델 집중 위험 등 새로운 금융 불안 요인을 안고 있다”며 “특히 생성형 AI의 환각현상과 초고속 확산은 금융 안정성에 도전 과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은행 금융기관의 급성장도 새로운 리스크 중 하나다. 투자은행, 사모펀드, 연기금, 보험사 등으로 구성된 비은행 부문은 기업 대출과 국채시장에서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며 자금 공급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유동성·만기 불일치 문제와 중앙은행 긴급 지원 부재, 규제 사각지대 등으로 인해 금융위기 시 신용 축소가 은행보다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 차관은 “비은행금융기관은 다변화된 투자 전략을 보이는 동시에 경기·시장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기에 위기 시 변동성 확대와 유동성 경색을 초래할 수 있다”며 “기존 은행 중심의 금융안정 체제를 점검하고 보완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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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
신흥국 채무 부담에 달러체계 변화까지
비은행 금융기관이 늘어나면서 환(FX) 위험도 커졌다. 자산운용사, 연기금, 보험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이 금융 중개에서 중심 역할을 수행하면서 단기 유동성과 레버리지 의존도가 높아졌다. 해외 투자자들의 대규모 달러 헤지는 FX 스왑을 통한 위험 관리 과정에서 달러 가치 급락과 금융시장 혼란을 촉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흥국의 채무 부담도 심각하다.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경제보좌관 겸 통화정책국장은 “신흥국과 저소득국은 채무 서비스 부담이 급증해 일부 국가에서는 이자 지급이 교육·보건 지출보다 많아 개발이 지연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신 국장은 “이들 국가는 채무 불이행을 하지 않았더라도 사실상 개발 자체가 지연되는 ‘개발 디폴트’ 상태에 놓여 있다”며 국내총생산(GDP) 연동 채권과 같은 위험 공유형 채무 구조화, 국제 협력, 정책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달러 체계가 변화하고 있는 것도 금융시장의 리스크가 될 수 있다. 미국 달러는 여전히 글로벌 금융의 중심통화지만,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은 70%에서 최근 58~59%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로와 위안화 등 대체 통화 비중이 점차 늘어나면서 달러 체계의 점진적 분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로슬라브 싱어 전 체코 중앙은행 총재는 “달러 의존 포트폴리오 구조에서 단기 충격이 금융 시스템 전체로 전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이번 컨퍼런스는 매년 국제경제·금융 석학 및 정책 담당자들이 모여 글로벌 금융위험 요인을 진단하고 대응책을 논의하는 행사로, 올해로 11번째다. 올해는 ‘구조변화와 불확실성 환경에서의 금융안정성 강화와 회복력 제고’를 주제로 △글로벌 불균형의 조정 △국제금융 시스템 주요 과제 △변화하는 국가부채 환경 등 3개 세션으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