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영혼’이 아닐까. 최근 방영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대성공은 단순한 이야기 구조나 배우들의 연기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시청자들이 깊이 공감한 이유는 부모님이라는 공통된 향수에 있다. 그 향수가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의 사랑과 희생을 통해 세상을 처음 배웠기 때문이다.
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우리 영혼에 가장 먼저 새겨진 감정이다. ‘폭싹 속았수다’는 그 영혼의 기억을 생생하게 불러낸다. 아버지는 거친 바다로 나가 온몸으로 생계를 책임졌고, 어머니는 시대의 제약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일하고 배우며 삶을 개척해 나갔다. 부모 세대는 단순히 참고 견딘 존재가 아니라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대를 넘어서며 가족을 지켜낸 이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영혼 없는 삶이 일상이 된 사회다. 눈앞의 단기적 성과와 빠른 속도만이 지배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사람의 마음과 존엄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그 병폐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 10일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수업 중 모바일 게임을 하다가 휴대폰을 빼앗기자 교사를 폭행한 사건은 단순한 학교 폭력 문제가 아니다. 오랜 시간 ‘공부만이 성공’이라는 공식을 주입해 온 영혼 없는 교육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다. 교사는 지도자도 보호자도 아닌 존재로 소외되고, 학생은 방향 잃은 학습노동자로 내몰린 교실에선 인성과 존중, 공감이 설 자리를 잃었다. ‘왜 배우는가’라는 질문 없이 성적만을 좇는 교육은 결국 인간을 놓친 경쟁만을 남긴다.
의료 현장도 다르지 않다. 지난 14일 이국종 교수는 군의관 대상 강연에서 한국에서 외과 의사로 살아남기 어렵다며 탈조선을 권유하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극한의 현실을 목격해 온 그조차 후배에게 한국을 떠나라고 조언한 현실은 오늘날 의료 시스템의 방향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생명을 살리는 최전선조차 경제 논리에 갇힌 상황에서 의료는 점점 ‘치유의 가치’보다 ‘수익의 논리’가 앞서는 구조로 왜곡되고 있다.
정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된 뒤 사저로 돌아간 지난 11일 대학생들이 단체로 과 잠바를 입고 배웅한 장면이 연출 논란을 일으켰다. 만약 이것이 연출이라면, 청년을 권력의 이미지 도구로 활용한 대표적인 영혼 없는 퍼포먼스가 될 것이다. 정치가 신뢰와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연출과 이미지로 대체되는 순간 그것은 공적 책임이 아닌, 사적 기획에 불과하다.
다가오는 대선은 단순한 정권 교체나 진영 간의 승부를 넘어, 대한민국이 어떤 사회로 나아갈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정책의 부족이나 제도의 미비만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도구화하고 경쟁과 효율만을 앞세우며 공동체를 구성하는 영혼을 소모해 온 사회구조의 결과다. 교육은 성적이 아니라 사람을 키워야 하고, 의료는 수익보다 생명을 우선시해야 하며, 정치는 이미지가 아니라 진정성으로 말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폭싹 속았수다’를 통해 그리워한 삶이며 지금 우리가 되찾아야 할 영혼이다.
이번 대선은 묻고 있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가? 앞으로의 5년, 어떤 리더십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야 하는가? 눈앞의 단기적 성과와 빠른 속도만이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다시 중심에 둘 수 있는 정치, 그 회복을 선택할 기회가 지금 우리 앞에 있다